[탈출! 인구절벽 2부]<2>남성의 육아 참여 늘려야
《 스웨덴인 젠스 홉로 씨(40)와 안나카린 홉로 씨(34·여) 부부는 2009년부터 싱가포르에서 살면서 두 자녀를 낳았지만, 육아 부담 때문에 2012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세계적 가전기업 일렉트로룩스에 다니는 젠스 씨와 회계사 안나카린 씨는 싱가포르 지사에서 근무하며 스웨덴에서 일할 때보다 1.5배가량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딸과 아들을 연이어 출산하면서 자녀 어린이집 비용 약 80만 원, 건강보험료 약 100만 원, 필리핀인 가사도우미 비용 60만 원 등 지출이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아시아 문화권 특유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일하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었다. 》
○ 육아휴직 480일 중 남성 최소 90일 의무사용
특히 남성 육아휴직을 활성화하기 위해 480일 중 90일은 남성이 사용하지 않을 경우 소멸되도록 했다. 여성만 육아휴직을 쓸 경우 전체 휴직 가능 일수가 390일로 줄어드는 것이다. 이런 의무사용 일수가 정착되면서 지난해 전체 육아휴직 480일 중 남성이 사용하는 일수가 약 25%를 돌파했다.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 솔나 지역의 맞벌이 부부 타운에 살고 있는 젠스 씨는 “우리 아버지 세대(60대)만 해도 육아휴직을 이렇게 많이 사용하지는 않았다”며 “하지만 의무사용일이 지정되면서 전체 30가구가 모여 사는 이곳 타운에만 5명의 남성 육아휴직자가 있을 정도로 보편화됐다”고 말했다.
육아휴직은 아내의 육아 부담을 줄여줄 뿐 아니라 젠스 씨의 삶의 패러다임도 바꿨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등과 목 디스크 증상이 심했지만, 육아휴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통증이 완화됐다. 또 평소 관심만 있고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슬로 쿡(한 가지 음식을 8시간 이상 천천히 조리하는 요리법)을 매일 하며 가족 건강도 챙기고 있다. 그는 “육아휴직 전에 아이들에게 나는 아이패드보다도 못한 존재였다”면서 “이제는 엄마보다 나를 더 많이 찾을 정도로 위상이 회복됐다”며 밝게 웃었다.
남성 육아휴직 기간은 다음 아이를 갖는 시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스웨덴 정부와 기업들은 젊은 부부들의 의무사용일(90일)에 다른 휴가들을 연계하는 것에 관대한 분위기다. 젠스 씨 부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육아휴직과 겨울 정기휴가 등을 붙여 4주 동안 동남아시아 여행을 다녀왔다. 안나카린 씨는 “육아휴직을 하면서 둘째, 셋째를 갖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스웨덴 육아휴직 제도 40년 논쟁 끝에 완성
한국도 남성 육아휴직이 증가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자는 4872명으로 전년(3421명)보다 42.4% 증가했지만 여전히 전체 육아휴직 사용자 중 남성의 비율은 5.6%에 불과하다. 특히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남성 육아휴직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늘리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엄마가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일터로 복귀한 뒤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통상임금의 100%(상한 150만 원, 하한 50만 원)를 급여로 지급하는 ‘아빠의 달’ 제도를 1개월에서 3개월로 확대했다. 고용부와 건강보험공단은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하는 사업주를 처벌하기 위한 ‘스마트 근로감독’도 강화했다.
전문가들은 육아휴직의 천국 스웨덴을 그저 실현 불가능한 이상으로만 치부할 일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스웨덴도 파격적인 육아 지원 정책들이 단기간에 정착된 것이 아니라 40년에 걸친 논쟁 속에 완성됐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저출산 우려가 높았던 1974년부터 육아휴직을 처음 도입했고, 남성의 육아 참여 확대를 위한 정부 캠페인을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 간의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2002년에야 처음으로 60일 남성 육아휴직 의무사용일이 지정됐고, 올해 다시 90일로 늘어날 수 있었다.
니클라스 뢰프그렌 스웨덴 사회보험청 대변인은 “타국 사람들은 스웨덴의 복지가 단숨에 이뤄진 것처럼 여기지만, 실상 엄청난 논쟁과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라며 “한국도 지금 논의를 시작해야 10년 뒤, 20년 뒤 더 나은 제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