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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기린 다리’와 ‘키스’

입력 | 2016-06-02 03:00:00


배려심 깊은 조인성(왼쪽)과 당당하고 솔직한 전도연(오른쪽).

이승재 기자

“A는 매니저 한 명만 대동한 채 촬영 장소를 당당하고 자유롭게 다니면서 사람들의 환호에 일일이 편한 미소로 답해주는 반면, B는 차 안에 꽁꽁 숨어서 지나갈 길 만든다고 두 시간을 사람들 통제하더니, 결국은 온몸을 가린 채 우산까지 대동해서 얼굴도 못 보게 하고 촬영 장소로 이동하더라고요. 두 사람의 상반된 태도로 B는 급비호감이 되었고, A에겐 ‘잘생겼다’ ‘아우라가 장난 아니다’ 등등 찬사 일색이었습니다. 그들의 생활을 겪어보지 않아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B가) 너무 예민하게 처신하는 모습은 스타로서 좀 자제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팬들의 관심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인데….”

한 교육정보 인터넷 카페에 최근 학부모가 올린 글이다. 우연히 집 근처 드라마 촬영 현장을 보게 되었는데, 꽤 관록 있는 남자배우 A는 팬들에게 친절하게 대한 반면 배우 커리어가 일천한 가수 겸업 B는 온갖 비싼 체 다 해가면서 욕을 먹었다는 얘기다.

근데, 원래가 그렇다. 자기도 놀랄 만큼 갑자기 떴거나, 안 뜰 애가 재수 좋게 떴거나, 안 떴는데도 떴다고 착각하거나, 이미 가라앉고 있는데도 이걸 부인하고 싶어 하는 배우들이 주로 이런 눈꼴사나운 모습을 보인다. 원래 예쁜 여배우는 예쁜 티 안 내지만, 성형 엄청나게 한 여배우들이 더 여성스러운 체, 까다로운 체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인기의 속도만큼 내면이 성숙되지 않은 데다, 자기 업(業)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다.

배우에겐 겸손도 전략이다. 인성도 전략이다. 얼마 전 ‘라디오스타’란 TV 예능프로에 영화배우 강하늘이 출연했다. 드라마 ‘미생’과 영화 ‘스물’ ‘동주’에 나왔던 그 배우다. 패널이 “연예인 치고 얼굴이 크다”고 공격하자, 강하늘은 “개인적으로 (큰 머리에) 자부심이 있다. 무대에 있을 때 부모님이 쉽게 찾을 수 있어서 장점”이라고 받아넘겼다. 배우 오달수에겐 큰 머리가 특장점일 수 있겠지만, 청춘스타가 ‘큰 머리’란 얘기를 듣고 진정으로 기분 삼삼해 했다면 정상이 아닐 터다. 원래 심성도 곱겠지만, 강하늘은 바로 이런 긍정적 태도가 자신을 끌어올려주는 엔진이란 걸 지혜롭게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난 본다.

내가 인터뷰를 하면서 시쳇말로 ‘뿅’간 톱 배우가 둘이다. 첫 번째는 조인성. “코 성형을 하지 않고는 그런 코가 나올 수 없다”고 무례한 질문을 내가 하자, “만져보라”며 내 손을 잡아 자기 코에 얹은 자가 조인성이다. 만져봤더니 진짜로 말랑말랑한 자연산이었다. 인터뷰 직후 기념사진을 함께 찍는 순간, 나는 또 감동했다. 조인성은 물 마실 때의 기린처럼 갑자기 가랑이를 쫙 찢어 양다리를 벌린 뒤 사진기자에게 이렇게 말하며 내게 어깨동무를 해주는 것이 아닌가.

“바스트 숏(가슴 윗부분만 촬영하는 것)으로 잡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신보다 키가 20cm나 작은 나를 배려해 자기 옆에 선 내가 ‘호빗’처럼 나오지 않게 해주려는 배려였다. 그가 뼛속까지 배려심이 깊은 남자인지,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건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조인성은 열혈 팬 한 명을 추가로 확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전도연. ‘돌직구’ 질문을 던지기로 작심한 나는 “영화를 보니 진짜로 상대를 사랑해 하는 키스 같았어요”라는 질문으로 포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녀의 답변을 듣고 외려 얼굴이 빨개진 건 나였다. 그녀는 자신의 매력이 무엇인지, 그리고 대중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무서울 만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으음, 뭐, (키스에) 굶주려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자꾸 진짜라고, 진짜 사랑하는 거라고 믿게 되는데, 그게 무슨 힘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키스에도 배우의 생각이나 생활이 나타난다고 믿어요. 저는 ‘올인’하는 스타일이에요.”(전도연) “도연 씨의 그런 점 때문에 남자들이 판타지를 가져요. ‘나도 저렇게 사랑해주진 않을까’ 하고요.”(나) “저 진짜 사랑해줄 수 있는데….(웃음) 그거 판타지 아니거든요. 판타지라고 하지 마세요.”(전도연) “이런 말을 들으면 남성 팬들이 도연 씨를 더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나) “왜요? 제가 퍼주는 여자처럼 보여서요? 호호.”(전도연)

나는 돌직구를 던지기는커녕 전도연에게 KO패를 당했다. 이후 나는 ‘전도연’이라고 하는 정신적인 감옥에 갇혀버린 죄수가 되고 말았다. 그것도 종신형으로.

그렇다. 세상 모든 성공은 태도와 마음가짐이 결정한다. ‘서울대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죽을 만큼 들어가고 싶어 하는 학생이 들어가는 것’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배우가 그렇다. 간절함을 잃고 비싼 체하는 순간 ‘훅’ 간다. 싸구려만이 비싼 체를 한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