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국회 시작부터 대치]
“국회 운영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실제로 하기는 쉽지 않다. (여당과의 협상을 위한) 논리 대응 차원에서 한 이야기라고 봐 달라.”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1일 기자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국회의장 자유투표는 ‘협상용’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새누리당이 “전통적으로 의장은 1당이 아닌 여당 몫”이라고 주장하자 거야(巨野)의 위세를 앞세워 여당을 굴복시키려고 던진 카드라는 얘기다. 우 원내대표는 야권만으로 7일 예정된 본회의를 열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어떻게 개원 국회를 야당만 모아서 하겠느냐. 레토릭(수사)이다. 여당 의원들이 불참하고 야당만 (의장 선출) 투표를 하면 공멸”이라고 했다.
20대 국회에서도 구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타협과 양보의 협치 정신은 사라지고 또다시 정치적 힘겨루기와 밥그릇 챙기기가 여야 협상을 지배하고 있다. ‘정치를 바꾸라’는 4·13총선 민심에 여전히 정치권이 응답하지 못하면서 “20대 국회도 싹수가 노랗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정 민생경제점검회의 등 ‘협치 실험’이 시작도 하기 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꼼수와 몽니
국회 원 구성을 마쳐야 하는 법정 시한은 9일로 일주일 남았다. 하지만 1일 여야는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않았다. 야권은 전날 세월호특별법 개정안을 20대 국회 개원 즉시 처리하고 4개 현안의 상임위 청문회(가습기 살균제 피해, 어버이연합 자금 지원 의혹, ‘정운호 게이트’ 관련 법조 비리, 농민 백남기 씨 과잉진압 논란)를 열기로 합의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야권 야합’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는 “전날 나만 빼고 자기들(야권의 원내수석들)끼리 만난 것 아니냐. 상임위원장 배분도 짬짜미한다는 얘기가 있다. 야당이 숫자로 밀어붙이겠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반발했다. 김 원내수석은 야당의 사과를 요구하며 ‘협상 보이콧’을 선언했다.
그러자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야 3당(더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이 합의했다고 여당이 협상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야당이 하는 일은 모두 여당의 결재를 받으란 말이냐”며 “(청문회를 열기로 한 4대 현안에 대해) 아무 일 없다는 듯 침묵하면 협치냐”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의 협상 보이콧을 ‘몽니’로 규정한 것이다.
○ 각자 ‘셈법’만 난무
야권 위세에 눌린 새누리당에선 다시 무소속 의원 복당 문제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무소속 의원 7명을 복당시키면 1당으로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의장직을 요구할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야권은 즉각 반발했다. 더민주당 박광온 수석대변인은 “민의가 만든 의석수를 자당의 이익을 위해 붕괴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자 국민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원 구성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복당을 시킨다는 발상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 중진 의원들은 ‘잿밥’에만 눈독
여야가 ‘치킨게임’에 몰두하면서 기대했던 정치 쇄신 경쟁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새누리당과 더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무노동 무임금 원칙’의 실천을 약속했다. 의정활동 중단 기간 세비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각 개원’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당 차원의 결의 움직임은 없다. 그 대신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이날 “국회가 일을 시작하지 못하면 국민의당은 원 구성이 될 때까지 세비를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지각 개원의 책임을 새누리당과 더민주당에 돌리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재명 egija@donga.com·길진균·한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