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기 경제부 기자
두 차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석유를 수입해 쓰던 한국은 큰 충격을 받았다. 1차 석유파동 직후인 1975년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24.7% 상승했고, 원유 수입액 증가로 무역수지는 적자를 기록했다. 1978년 2차 석유파동 후인 1980년에는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1.7%)를 보였다. 이에 당시 정부는 석유 문제에 전문적으로 대응하도록 한국석유개발공사(현 한국석유공사)를 1979년에 세웠다.
이후 지지부진하던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은 한국 경제가 선진국 대열을 넘보던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기지개를 켰다. 이명박 정부는 ‘자원 외교’를 핵심 국정 과제로 내세우고 해외 자원 개발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당시 대통령과 자원개발 관련 공기업 사장들이 문턱이 닳도록 해외를 오가며 계약을 따내고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 해외 자원 개발 사업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다. 중국은 대형 국영기업을 앞세워 ‘자원굴기’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가 내놓은 해외 자원 개발 추진 체계 개편안은 아쉽기만 하다. 부실이 심각한 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 3사를 통폐합하는 등 구조 개편에만 치중돼 있어서다.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이상을 내다보며 추진해야 한다. 따라서 5년 임기의 정부에서 성과를 기대하고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해외 자원 개발 사업 전담 공기업이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추진 체계를 갖춰야 하는 이유다. 영일만의 꿈은 일장춘몽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당시 국민이 가졌던 절박한 심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세종에서
신민기 경제부 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