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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SNS에서는]숨진 곳으로 기억되는 청년

입력 | 2016-06-03 03:00:00


박희창 경제부 기자

이곳에서 그는 이름 대신 숨진 곳으로 기억됩니다.

2일 지인 2명이 ‘좋아요’를 눌렀다며 ‘구의역 스크린도어 9-4 승강장’이라는 이름의 페이지가 제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떴습니다. 들어가 보니 지난달 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안전문)를 정비하다 숨진 김모 씨(19)를 추모하는 글들이 이어집니다.

김 씨의 친구가 구의역에서 직접 찍었다는 사진들도 올라와 있더군요. 누군가 놓고 간 ‘우리 형이 최고야’라는 제목의 동화책, 꽃잎이 그려진 수저와 컵라면, 조그만 일회용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흰밥과 국…. 밥 그릇 밑에 붙어 있는 노란 포스트잇에는 ‘라면 먹지 말고 고깃국에 밥 한 그릇 말아 먹어라’라는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포스트잇 위에 시민들이 쓴 글들도 눈에 들어와 박혔습니다. ‘내 교통비 1250원에는 너무나도 값싼 그대의 목숨 값이 들어 있었군요.’ ‘성실했던 사람이라 위험한 줄 알면서도 지시를 따랐고 사고가 났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착실한 청년들의 희생이 반복돼야 이 나라는 안전한 나라가 됩니까?’

타임랩스(한곳에서 오래 촬영한 뒤 빠르게 돌려서 보여 주는 영상 기법)로 촬영한 1일 구의역 9-4 승강장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포스트잇 앞에 선 한 여성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모든 이들이 빠르게 사라지는 36초 분량의 동영상 속에서 그녀는 20초 가까이 화면 한 구석에 머뭅니다. 서 있는 위치와 눈높이만 바꿔 가며 포스트잇 한 장 한 장을 꼼꼼히 읽습니다.

떠도는 루머를 바로잡는 게시물도 타임라인 한 칸을 차지했습니다. 추모 포스트잇을 제거했다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온다고 하니까 다시 붙였다는 내용의 글이 트위터나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유포되고 있다는 말로 시작하는 이 게시물은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 포스트잇과 관련된 진행 상황들이 날짜별로 요약돼 있습니다. 게시물은 ‘사실이 아닙니다. 뉴스조차 보지 않고 작성한 내용입니다’라며 주의를 당부합니다.

게시물 하나하나에 마음이 가득 묻어났습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해져 페이스북에서 해당 페이지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담아 두는 ‘페이지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아무런 내용도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페이스북 속 추모의 벽에 새겨진 글과 사진, 동영상에는 그의 단편적인 삶의 모습과 죽음 이후만이 담겨 있습니다. ‘생일 전날’, ‘가방에서 나온 뜯지 않은 컵라면’은 그가 살아온 삶의 아주 작은 조각들이지요. 텅 빈 공간으로 남게 된,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채워 나갔어야 할 타임라인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그려졌을까요. 영영 그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립니다.
 
박희창 경제부 기자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