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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눈/토머스 허버드]민간 차원에서라도 북핵 6자회담 이어가야

입력 | 2016-06-03 03:00:00

北, 핵-경제 병진 노선 재천명… 5차 핵실험도 언제든 할 수 있어
美 中 日 韓 전문가 논의에서, ‘비핵화’ 외침의 한계를 지적
그럼에도 북핵 이슈 대화는 끌고가야 해법 찾는다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미국대사

북한은 지난달 6일 노동당 대회를 개최했다. 김일성 주석이 1980년에 개최한 후 36년 만이다. 이번 노동당 대회는 김정은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대관식이었다. 노동당은 김정은을 당 위원장으로 임명하며 이 젊은 독재자에게 정치적 정통성마저 부여하려 했다. 김정은은 이번 노동당 대회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선언하고 핵개발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이른바 ‘병진 노선’을 재천명했다.

지금까지 4번 핵실험을 한 북한은 원하면 언제든지 5차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상태로 준비돼 있는 것으로 한미 정보당국은 보고 있다. 나아가 김정은은 북한 체제와 김씨 왕조의 존속을 위해 핵실험을 넘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장거리 핵 투발(投發) 수단을 갖춰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렇게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 보유를 자위 수단이라고 강조하는 한 불행하게도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대화 노력은 당분간 진행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북핵 문제에 관한 한 국제사회는 사실상 대화 노력을 중단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북한은 한국은 물론이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주변 4개국(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과의 관계도 점차 악화되고 있다.

이미 ‘동면 상태’에 들어간 북핵 6자회담의 재개는 이렇듯 요원해 보이지만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연구와 고민까지 잠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26일 필자가 이사장으로 있는 코리아소사이어티는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 등 4개국의 한반도 전문가, 전직 관료들과 함께 북핵을 포함한 동북아 안정과 협력을 위한 난상토론을 했다. 북한의 핵능력은 물론이고 체제 전복 등 급변사태 가능성과 통일 시나리오, 북한과의 대화 재개 가능성까지 북한과 관련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안을 논의했다.

민간 차원의 논의였지만 소속 국가별로 일부 이슈에 대해서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중국의 역할에 대해서도 중국과 미국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확연히 달랐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방안과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건에 대해서도 엇갈렸다. 그럼에도 북핵 문제는 동북아의 가장 큰 위협 요인이며 어떤 식으로든 국제사회가 계속 주목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했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일부 참석자는 북한이 명백히 핵 능력을 키워가며 핵보유국으로 나아가고 있어 비핵화만 주장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을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했다.

필자가 토론 내용을 다소 길게 설명한 것은 6자회담을 비롯해 북핵 관련국 간의 다자 대화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에서 이렇게 민간 차원에서라도 대화를 어떻게든 이어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물론 학자들 간의 북핵 세미나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 문제는 결국 국가 간 대화로만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토론에서 새삼 깨달은 것은 북핵 이슈에 대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성사되기 어려운 국가 간 대화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학계는 물론이고 북핵 문제에 정통한 언론계 인사까지 참여하는 폭넓고 솔직한 대화는 북핵 문제를 어떻게든 이슈화하는 데 중요하다. 이런 토론은 법적, 행정적 구속력이 없는 만큼 자유롭고 내용에도 제한이 없다. 말 그대로 브레인스토밍이 가능하다.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 국면에서 북핵과 관련한 국가 간의 대화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핵 이슈에 대한 대화를 당사국의 민간 차원에서라도 유지하고 끌고 가면 언젠가는 제2의 6자회담이나 하다못해 5자회담, 4자회담이라도 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로 토론과 고민마저 포기한다면 이는 북한 정권이 진정 원하는 바가 아닐까.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미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