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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광표]마을벽화 유감

입력 | 2016-06-03 03:00:00


이광표 오피니언팀장

최근 서울 종로구 이화마을에서 일부 주민이 골목길 계단의 벽화를 지우는 일이 발생했다. 마을벽화를 지운 주민들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는 바람에 우리가 너무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이 벽화를 다시는 복구하지 말라”고 그동안의 불편함과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주민들과 함께 지역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인데, 일방적으로 벽화를 훼손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찬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벽화마을 관광지의 주민들이 불편해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종로구 등 자치단체들은 정숙 관람을 권장하겠다고 밝혀 왔다. 그러나 정숙 관람이 잘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원주민을 배려하지 않는 탐방객들을 그동안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요사이 벽화마을이 부쩍 늘어났다. 이화동, 통영의 동피랑마을. 부산의 감천마을, 서울 강풀만화거리는 물론이고 전주 청주 여수 등 전국 어딜 가도 곳곳에 벽화 골목이 있다.

마을벽화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성된 경우가 많다. 이 프로젝트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노후한 마을이나 건물을 재생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주민들의 수익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취지는 분명 좋았다. 하지만 냉정히 돌아보면 이 프로젝트의 관점은 대부분 관광객 중심이었다. 주민이 참여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어떻게 하면 관광객을 더 많이 유치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렇다 보니 원주민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벽화마을 관광지들은 소음 공해에 여기저기 쓰레기가 늘어나고, 원주민들의 바깥나들이는 점점 더 불편해졌다. 관광객이 몰리다 보니 자고 나면 카페만 늘어났다. 자연스레 건물 임차료가 올라갔고, 세탁소나 과일가게 같은 생계형 가게를 운영하던 원주민들은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야 했다. 원주민이 사는 주택가인지 카페촌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지역도 있다.

벽화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도 지적해야 할 대목이다. 골목 중간중간 한두 곳에서 벽화를 마주친다면 멋진 풍경일 텐데, 골목골목 꽉 차 있는 벽화를 보노라면 번잡하고 부담스럽다. 지나치게 원색이 많고 아마추어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좀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마을벽화를 보고 별 감동을 느끼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아기자기하고 동화적이어서 외려 더 좋다” “프로 작가들만의 미술이 아니라 주민과 함께 벽화를 그렸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더 인간적인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일견 그럴 수 있지만, 공동 참여라는 과정이 서툰 결과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요즘 곳곳에 들어서는 조각공원도 상황이 비슷하다. 작품성과 관계없이 조각물을 채워 넣기에 급급한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이는 원주민을 배제한, 관광객 중심의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반대한 원주민보다 찬성한 원주민이 많았고 또 원주민이 참여했지만, 중요한 것은 관광객이었다. 인근 도로는 자동차로 꽉 차고, 늘어나는 건 카페와 음식점이다. 서울 서촌, 가회동, 삼청동도 그렇고 부산 감천마을도 그렇다.

이번 이화동 마을벽화 훼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주민과 함께하는 것도 좋고 관광 활성화, 소비 진작도 좋지만 근본적으로 마을벽화 자체의 품격을 고민해야 한다. 냉정하게 봐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의 마을벽화는 지나친 감이 있다. 관광을 위해 과도하게 유행에 편승하는 건 곤란하다. 우리네 마을벽화에 절제와 여백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