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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의 프리킥]박원순 시장의 두 갈래 길

입력 | 2016-06-03 03:00:00


허문명 논설위원

“‘생활 시장(市長)’으로서 훌륭한 사람이다. 책도 많이 보고 아이디어도 많고 생각한 대로 성과를 만들어내는 성과 추구형 리더다.” “공무원들과 더불어 일할 줄 아는 팀플레이 능력과 꼼꼼하고 실무적인 행정능력을 겸비한 행정가다.”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주변에서 들은 박원순 시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들이다. “대통령 감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들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다. 그를 잘 아는 한 대학교수는 “그는 소통능력이 좋고 겸손한 사람이다. 아마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리더십’을 보며 자신이 대통령을 하면 더 잘하리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그의 속마음을 대신 설명했다.

각자 자기가 잘 아는 분야에서 국가와 국민에게 얼마든지 봉사할 수 있고 또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데도 모두 대선만 바라보는 풍조는 분명 이상하다. 여야 간에 강력한 후보가 아직 없다 보니 한편에선 대통령제가 수명을 다했다며 내각제 개헌의 골든타임이라는 주장이 있는 가운데 나름대로 장점과 한계를 가진 후보들이 각자 점프를 시도 중이다. 박 시장도 그중 한 명이다.

그의 당내 기반은 매우 취약하다. 이번 국회에 측근들의 입성을 추진했지만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그는 조급해 보인다. 5월 광주를 방문해 뜬금없이 “열사들을 따르겠다. 뒤로 숨지 않겠다”며 서울시장으로서 다소 생뚱맞은 말을 하더니 서울시청 광장에서 5·18 36주년 기념식을 독자적으로 열기도 했다. 호남에 대한 구애전략의 일환인지는 몰라도 이 역시 서울시장 행보로는 매우 어색해 보였다. 구의역 비정규직 청년 사망사고로 “서울을 먼저 챙기라”는 시민 여론과 정치권의 비판이 이어지자 충청권 1박 2일 방문 계획을 급거 취소하기도 했다.

2년째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천막촌을 허용하고 있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단계적으로 철수하겠다”는 말만 던져놓고 부지하세월이다. 나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이 서 있고 각 나라 외교사절들이 오가는 대한민국의 심장 같은 곳에 세워진 천막들을 매일 지나친다. 그때마다 서울을 찾은 전 세계 관광객들이 이곳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디 몸을 숨기고 싶은 심정이 되곤 한다. 광화문광장이 박 시장 개인 땅인가? 이렇게 시민들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면서까지 천막촌을 유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박 시장이 시민운동을 할 때 사회공헌 업무를 하며 지원했다는 한 전직 대기업 임원의 말이다. “그는 명분을 앞세우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교묘히 취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여주었다. 한 손엔 재벌의 약점을 노리는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론 지원을 받아냈던 모습을 보며 실망했다.”

대선 가도에 뛰어드는 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의 자유다. 그의 앞에는 대선판에 뛰어드는 길과 그렇지 않은 두 가지 길이 놓여 있다. 조만간 그는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만일 대선에 나가려면 시장직을 사직하고 뛰어들어야 한다. “저 놀부 두 손에 떡 들고…”라는 노래 가사처럼 시장 직무와 대선 행보를 둘 다 하겠다는 것은 자신을 뽑아준 서울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이며 선공후사(先公後私)여야 할 공인의 처신으로 매우 부적절하다. 공사가 뒤바뀐 이런 행태 때문에 그의 ‘이중성’이 또다시 도마에 오를 수 있다.

JP(김종필)가 정치를 허업(虛業)이라 했다던가. 박 시장의 미래가 허업을 더 쌓는 길이 아닌 자기실현의 행복의 길이었으면 좋겠다. 어떤 길이 되었든 자신의 미래를 놓고 성찰한 후 그로부터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