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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의 사회탐구]정부와 스마트폰이 키운 미세먼지

입력 | 2016-06-04 03:00:00


정성희 논설위원

외출 전 휴대전화 앱에서 미세먼지 농도를 알아보고 황사 마스크를 챙긴 뒤 나간다. 웬만하면 고등어는 구워 먹지 않도록 한다. 미세먼지 공포에 휩싸여 있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풍속도는 솔직히 말해, 어리둥절하다. 어제까지 잘 살았던 남편이 알고 보니 ‘낯선 사람’이더라는 식의 영화를 연상케 한다.

하필이면 왜 지금인가

우리나라 공기는 2005년부터 정체 상태였지만 체감하는 공기 질은 나쁘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노천카페가 생기고 중국인이 스모그를 피해 관광 오고 국민의 평균수명은 늘어났다. 그런데 왜 올봄에 느닷없는 미세먼지 파문일까.

첫째, 미세먼지의 위험성이 부각됐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미세먼지는 위험하다. 작아서 위험하다. 기도에서 걸러지지 않고 폐부 깊숙이 자리해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대기오염과 미세먼지를 각각 112번째와 113번째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것이 2013년 10월이었다. 매일 들이마시는 공기에 발암물질이라니…. 충격이지만 3년 전에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둘째, 경유차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지난해 미국 환경보호국(EPA)이 폴크스바겐 디젤차가 공식 테스트가 아닌 실제 주행 중에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꺼진 채 기준치의 40배에 달하는 배출가스를 내뿜는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유럽 디젤차는 친환경차인 줄 알았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 소비자를 속인 디젤차에 대한 분노가 미세먼지로 연결됐을 수 있으나 한국에선 폴크스바겐 디젤차가 더 많이 팔려 나간 사실을 볼 때 이 영향도 제한적이다.

셋째, 올 들어 미세먼지가 유독 심했을까 알아봤더니 그렇지도 않다. 금년 1월부터 3월까지 서울의 미세먼지 월평균 농도는 50, 45, 63μg으로 ‘보통’(31∼80μg) 수준을 유지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미세먼지 공포가 번지다 보니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정부 책임을 덮기 위해 정부가 의도적으로 공포를 확산시킨다는 소문까지 나돌 지경이었다. ‘고등어 책임론’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금년 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필자가 찾아낸 건 두 가지. 상반기에 미세먼지 농도가 100μg 이상으로 높았던 날이 예년에 비해 조금 많았으며 맑은 날인데도 미세먼지가 높다고 정부가 발표함으로써 국민의 의구심을 촉발했다는 점이다. 불안해진 사람들은 앞다퉈 미세먼지 예보 앱을 내려받았다. 미세먼지 파문이 정부에 대한 불신과 미디어 효과로 일어났음을 짐작게 하는, 지극히 한국적 현상이다.

맑은 공기엔 대가 필요 인식해야

미세먼지는 어느 한 분야를 규제하면 그 파급력이 다른 분야로 전달되는 풍선효과가 작동하므로 대책 마련이 쉽지 않다. 경유차를 잡자니 서민이 울고, 발전소를 규제하자니 전기요금이 오르는 식이다.

모든 사람이 가해자이고 또 피해자인, 이런 상황에서는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이해관계자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 부(富)는 불공평하지만 환경은 공평하므로, 환경에 대한 투자는 모두에게 이익으로 돌아온다. 어쩌다 미세먼지 파문이 생겼다고 해서, 대책마저 어찌어찌 넘어가선 안 될 일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