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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개 역 스크린도어 반값 입찰… 저비용 날림공사에 고장률 10배”

입력 | 2016-06-04 03:00:00

업체들 증언… 메트로측도 부실 인정, 사망사고 난 구의역도 반값시공된 곳
‘서울메트로 출신, 은성에 우선 고용’
공정위, 용역입찰 계약 위법성 검토




121개 역이 있는 서울지하철 1∼4호선 중 스크린도어(안전문)를 먼저 설치한 24개 역의 역당 설치비용과 비교해 나중에 설치된 역의 설치비용이 ‘반값’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1년 넘게 걸렸던 설치 기간도 반년 이내로 줄었다. 지난달 28일 사망 사고가 난 지하철 2호선 구의역도 스크린도어가 반값으로 지어진 곳 중 하나다.

서울메트로 용역업체 관계자들은 3일 “처음 스크린도어를 24개 역에 도입할 당시에는 1개 역에 약 35억 원의 비용이 투입됐지만 이후 서울메트로가 나머지 97개 역에서 낸 입찰에서는 요구 사항을 대폭 간소화하고 공기(工期)를 줄여 설치 용역비가 18억 원 안팎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풍압(風壓)에 대한 내구성 확보 등 처음 24개 역에는 포함됐던 사항이 다수 생략된 것으로 파악됐다. 풍압은 두 지하철이 교차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바람의 압력을 말한다.

유지 보수 업체의 한 관계자는 “무리하게 비용을 낮추고 날림 공사를 한 탓에 고장이 잦을 수밖에 없다”며 “반값으로 지어진 스크린도어는 그렇지 않은 곳보다 고장률이 10배가 넘는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도 구의역과 을지로4가역에서 동시다발로 고장이 발생하면서 ‘2인 1조’ 규정을 지키지 못한 탓이 컸다.

정수영 서울메트로 사장직무대행도 이날 열린 서울시의회 업무보고에서 ‘부실시공’을 사실상 인정했다. 정 사장대행은 “스크린도어는 달리는 열차와 인접한 위험 시설이지만 최초 건설 당시부터 짧은 기간에 밀어붙였다”라며 “이 때문에 고장이 잦고, 유지 보수 효율화에도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이처럼 부실시공이 된 상황에서 ‘고장 예방을 위한 정비’ 예산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서울메트로의 한 관계자는 “2008년 구조조정과 함께 안전 설비 유지 보수를 외주로 전환하면서 고장을 사전에 예방하는 정비 명목은 대폭 줄이고, 고장 후 조치에 대한 비용만 유지됐다”고 말했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전직 직원의 채용을 보장하도록 규정한 서울메트로의 위탁사업 입찰 조건에 대해 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사고 희생자가 소속된 용역업체 은성PSD가 서울메트로와 체결한 ‘외부 위탁 협약서’에는 서울메트로 퇴직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해 우선 배치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또 퇴직 전 임금의 60∼80%를 잔여 정년에 따라 지급하는 내용도 담겨 ‘메피아’(메트로+마피아) 논란이 제기됐다.

황태호 taeho@donga.com·이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