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주정뱅이/권여선 지음/276쪽·1만2000원·창비
지인이 회사 동료에 대해 말했다. 이어 “그러고 보면 선하게 살아야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그렇다. 인생은 공덕과 비례하지 않는다. 소설, 영화, 드라마에서 숱하게 변주되는 ‘권선징악’에 열광하는 건 일종의 판타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7개의 단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특별한 잘못이 없는데도 고통 속에 내던져진다.
‘봄밤’의 수환은 어떤가. 스무 살부터 쇳일을 시작해 철공소를 차리지만 거래처의 횡포로 부도를 맞고, 재산을 빼돌린 아내는 잠적한다. 교사였던 영경은 전남편에게 아이를 뺏긴 후 알코올의존증 환자가 된다. 수환과 영경은 우연히 만나 부부가 되지만 수환의 류머티즘 관절염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사진을 배워서 찍고 싶어.” 관주는 여자친구 문정의 말에 카메라를 사주겠노라고 약속한다. 카메라는 문정의 손에 쥐어지지만 관주가 치러야 할 대가는 가혹했다(‘카메라’).
이들의 곁을 지키는 건 술이다. 커피 잔에 소주를 따라 마시고, 맥주 한 캔에 소주 두 병을 조금씩 섞어 30분도 안 돼 마셔 버린다. 보드카, 와인, 위스키까지. 술병은 뻥뻥 열린다. 꾸역꾸역 살아가게 만드는 숨구멍처럼. 제목 ‘안녕 주정뱅이’는 이들을 향한 위로처럼 들린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무심코 보아버린 한 장면이 인간을 꼬꾸라뜨리는 모습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애처롭지만 축축 처지지는 않는다. ‘이모’ ‘카메라’ ‘층’ ‘역광’ 등은 반전을 지닌 탄탄한 구조로, 책장을 넘기는 데 가속도가 붙는다. 술자리에서 먼저 일어선 적이 없다는 작가의 술 사랑도 찐득하게 스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