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서 유해 발굴… 가족 품 찾아 떠나 6일 현충일, 이제야 모십니다…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 1일 강원 홍천군의 한 야산에 설치한 작업 표지판. 감식단은 지난달부터 홍천 일대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한 결과 지금까지 유해 15구를 찾아냈다. 홍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일 강원 홍천군 사오랑고개 자락 무명755고지.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대원들은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치고 차가운 땅속에 묻힌 참전용사의 유해를 행여 훼손할까 한낮 땡볕에도 수술용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한 채 붓으로 조심스레 흙을 털어냈다.
고인의 전투화 밑창 잔해와 발가락뼈가 위를 향한 채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볼 때 용사는 물구나무를 선 듯 거꾸로 땅속에 묻혀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고인은 65년간 불편한 자세로 조국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해 발굴 베테랑인 안순찬 감식단 팀장은 “거꾸로 땅속에 묻혀 있는 유해는 처음이다. 당시의 긴박함과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대부분의 유해가 웅크리거나 팔이 꺾인 상태이지만 이번처럼 완전히 거꾸로 발견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 남루한 군화조각이 발을 감싸고 있었다… 홍천 유해발굴 현장▼
1일 강원 홍천군의 한 야산에서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과 육군 11사단 장병들이 전날 수습한 6·25 전사자의 유해에 경례하고 있다. 홍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시간 가까이 땅을 파헤치며 발굴 작업을 계속하던 감식단 송재홍 상병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흙뭉치처럼 보이는 검은 물체 주변으로 대원들이 몰려들었다. 정강이뼈와 발목뼈, 그리고 둘의 연결부위가 한눈에 들어왔다. 송 상병은 “이렇게 연결된 뼈가 제대로 보존돼 있는 것을 보면 토층 아래 나머지도 온전하게 남아 있는 완전 유해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감식단이 지금까지 발굴한 유해 가운데 완전 유해는 100구 중 서너 구에 불과할 만큼 희귀하다.
1일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대원이 65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6·25 전사자의 발가락뼈에서 조심스럽게 흙을 털어내고 있다. 홍천=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감식단이 찾아낸 유해들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참담한 모습인 경우가 많다. 감식단 공보담당 이원웅 소령은 “동물에게 뜯겨 심하게 훼손되기도 하고 나무뿌리가 뼛속을 파고들기도 한다”며 “발굴된 유해를 보면 고인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날 발굴 현장 주변에선 전날 발견한 국군 용사의 명복을 기리는 약식 제사가 열렸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지 65년 만에 받는 조촐한 제사상이었다. 대원들은 고인의 유해를 오동나무 관에 담은 뒤 태극기로 감쌌다. 이어 그 앞에 차린 제사상에 술 한 잔과 북어포를 올렸다. “호국영령에 대한 경례!” 대원들과 유해 발굴 지원에 나선 11사단 장병들이 고인을 향해 일제히 손을 올렸다.
산야에 숙연함이 감돌았고 이내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자신을 찾아준 후배들에게 고인이 보내는 감사의 표시 같았다. 반세기 하고도 15년을 더 기다려 전역한 젊은 용사는 후배들의 거수경례를 받으며 비로소 가족의 품을 찾아 떠났다.
이학기 감식단 단장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군 용사들을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다는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며 “이들의 빠른 귀환을 위해 전사자 유가족과 국민의 제보가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 6·25 전사자 유가족 유전자 등록 문의 및 관련 제보는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1577-5625)으로 하면 된다.
홍천=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