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은 언제나 영웅일 수는 없다. 날마다 자식들 뒷바라지에 먹고살 걱정 등 여러 문제에 붙잡힌다. 그러나 때가 무르익어 대의를 세우고 그것을 확신하면 평범한 사람도 영웅이 되며, 역사는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해 대전환기가 찾아온다.”
데카르트의 마지막 저서 ‘정념론’(1649년)도 편지가 낳은 책이다. 데카르트는 ‘30년 전쟁’ 중 쫓겨나 네덜란드에 머물던 보헤미아 왕녀 엘리자베스와 1642년부터 편지를 주고받았다. “생각하는 실체인 인간의 정신이 의지에 따라 행동하기 위해 어떻게 신체의 정기(精氣)를 움직일 수 있습니까?” 엘리자베스가 써 보낸 이 질문을 계기로 데카르트는 심신(心身) 관계와 정념의 문제를 더욱 깊이 고찰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성인이 된 이후 세상 떠날 때까지 18년간 편지 700여 통을 썼다. 생전의 불우와 사후의 명성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그의 편지는 울림이 크다. “훌륭하고 유용한 일을 성취하길 바라는 사람이라면 대중의 동의나 인정을 염두에 두거나 좇지 말아야 해. 오직 그와 공감하고 함께하려는, 마음 따뜻한 극소수만을 기대해야지.”(‘고흐의 편지1’·정진국 옮김)
e메일이 편지를 밀어냈으니 ‘책이 된 편지’는 더 이상 나오기 힘들고 e메일 내용이 책으로 나오게 될까? 이정록 시인의 경험은 e메일을 쓸 때도 여전할까? “그래 이 손으로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이고 텅 빈 우체통을 하루에 몇 번씩 열곤 했지. … 내가 편지를 쓰는 순간, 세상에는 드디어 네잎클로버가 있고 미루나무 푸른 이파리가 반짝인다.”(이정록의 ‘편지봉투도 나이를 먹는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