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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녕]국회의장이란 자리

입력 | 2016-06-06 03:00:00


육군참모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정일권(작고)은 8대 국회에서 전국구 의원 몇 달 한 것밖에 없는데도 9대 국회 입성하자마자 국회의장이 됐다. 유신체제이던 1973년의 일이다. 국회의장은 형식상 국회의원들이 선출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지명하면 그만이었다. 9대 국회 전반기, 후반기 합쳐 6년간 국회의장을 지냈다. 10대 국회의 의장직에도 내정됐다가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이 “국회의장은 박 대통령보다 나이가 많아야 한다”며 트는 바람에 백두진으로 바뀌었다. 정일권의 비서실장을 지낸 신경식 헌정회장의 증언이다.

▷이만섭(작고)은 소속 정당을 바꿔가며 두 번 국회의장을 지냈다. 14대 국회 전반기 의장은 김영삼 대통령이 지명했지만 16대 국회 전반기엔 김대중 대통령의 낙점이 아니라 여당 의원총회에서 후보로 추대된 뒤 본회의에서 야당과 표 대결 끝에 선출됐다. 그 스스로가 쟁취한 일로 역대 처음이다. 국회의장의 당적 이탈과 국회의원 자유투표에 의한 의장 선출을 명문화한 국회법이 마련된 것도 이만섭 의장 때다.

▷김형오 의장은 국회 국정감사 기간 중 외유를 가던 역대 의장들의 관례를 깨고 2008년 가을 국토순례를 떠났다. 이듬해 3월 결과물로 나온 것이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란 수필집이다. 2012년엔 4년간 심혈을 기울인 끝에 1453년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이 함락되는 과정을 그린 ‘술탄과 황제’란 역사 탐구서를 내놨다. 그는 저술활동과 강연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국회의장들은 대체로 그 자리를 끝으로 정치활동을 접는다. 그러나 19대 국회 마지막 국회의장 정의화는 이례적으로 퇴임 사흘 전인 5월 26일 싱크탱크인 ‘새한국의 비전’을 출범시켰다. 10월쯤 정치결사체로의 탈바꿈 가능성도 내비쳤다. 몇 달 후, 몇 년 후 그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국회선진화법 이후 국회의장의 실질적 권한이 크게 축소됐는데도 여야가 20대 첫 국회의장 선출 문제를 풀지 못한 채 아직도 티격태격한다. 얼마나 대단한 국회의장을 뽑으려고 이러는 건지….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