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케이스 1개에 7000원… “5개 모으면 일본산 에센스와 교환”
젊은층, 중고 사이트서 거래 활발… 일부 중저가품 담아 쓰며 대리만족
양주병-IT제품 박스는 짝퉁 악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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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다 쓴 화장품 용기와 전자제품 케이스 등을 거래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경제 불황 속에 싼 물건을 찾던 과거와 달리 슬기로운 방법으로 돈을 아끼고 개인적 만족을 위해 빈 용기를 사고판다.
중고 거래 사이트 ‘중고나라’에서는 하루 100여 건씩 중고 케이스가 거래된다. 화장품 용기는 물론이고 고급 양주병, 정보기술(IT) 기기 상자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제조사들도 중고 용기를 새 제품이나 적립 포인트로 교환해주는 이벤트를 열고 있다. 개당 1만 원 안팎의 빈 케이스는 새 상품을 저렴하게 구매하는 수단이 된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자원 절약이 화두가 되면서 정품 용기를 반납하는 소비자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화장품 제조사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빈 병이나 상자가 ‘귀한 몸’ 대접을 받는 건 중고 거래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때문이다. 유현정 충북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중고시장은 버려질 수 있는 재화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싼 물건을 사고파는 데 그쳤다면 최근에는 중고를 활용해 다양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중고 IT 기기가 정품 케이스를 만나면 신제품처럼 느껴져 소비자의 만족도가 올라가는 것도 일종의 새로운 가치 창출”이라고 진단했다.
중고 용기 거래 시장에서는 불황 때 적은 비용으로 개인의 사치욕구를 채우는 ‘립스틱 효과’도 나타난다. 주부 이모 씨(30·여)는 외국산 화장품 병에 국내 화장품을 담아 사용한다. “평소 비싸서 구입하기 힘들었던 걸 쓰는 느낌이 든다”는 게 이유다. 이런 ‘대리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면서 일부 외국산 화장품 용기는 2만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고급 제품의 빈 용기 유통은 범죄에 악용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유흥업소에서 남은 양주를 외국산 빈 양주병에 옮겨 담아 고가에 되파는 ‘리필 가짜 양주’가 대표적이다. 최근 가짜 화장품이나 가격이 부풀려진 중고 IT 제품 등 피해 사례도 늘고 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