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준 사회부장
3일 광주(光州)에서 들려온 뭉클한 사과가 화제가 됐다. 20층 아파트에서 투신한 대학생에게 부딪혀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곡성 공무원’의 유족 앞에 대학생 아버지가 무릎을 꿇었다. 아들 잃은 충격을 딛고 두 번이나 찾아와 “죽을죄를 졌다”며 용서를 빌었다. 트럭을 운전하며 43m² 임대아파트에서 80대 노모를 모시는 그는 “보상하고 싶은데 아들 장례비밖에 없으니 다달이 갚겠다”고도 했다. 유족들은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모두 아픈 상처를 안게 됐는데 무슨 보상이냐. 비극은 빨리 잊자”며 눈물을 흘렸다.
반대 사례는 차고 넘친다. 그림 대작(代作)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조영남 씨는 같은 날 검찰에 출두하기 전 기자들을 만나 아리송한 사과를 했다. “(나는) 정통 미술을 한 사람이 아닌데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다. 물의를 일으켜 송구스럽다.”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물음엔 입을 닫았다. 조 씨가 스스로 이렇게 말하기로 작정했는지, 전문가의 조언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만약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면 당장 그와의 관계부터 청산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2013년 국감에서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렸고…’→3년 전에도 사과했다니까! ‘2014년 조건 없이 50억 원의 인도적 기금을 기탁하였습니다만, 이번에 50억 원을 더…’→‘인도적’에 밑줄! 우리 책임은 없어. ‘최근 제기된 여러 의혹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으며…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는 점을…’→사사건건 잘못을 들춰내는 언론에 재갈을 물려야 해.
피해자들뿐 아니라 검찰도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아타울라시드 사프달 옥시 한국법인 대표는 지난달 2일 기자회견을 열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그러나 제품 판매 당시 살균제의 유해성을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엔 “알았다면 절대 팔지 않았을 것”이라고 잡아뗐다. 그는 18일 뒤 피해자들을 단체로 만나 잘못을 빌고 한 피해자 가정을 찾아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기도 했지만 달라질 것은 없었다.
사과할 때 절대 쓰지 말아야 할 3가지 표현이 있다. 사과 후 “하지만…”이라며 변명하는 것이 첫째, “만약 그랬다면 사과할게”처럼 조건을 다는 것이 둘째, “실수가 있었습니다”는 식의 ‘유체이탈’ 화법이 셋째다.(‘쿨하게 사과하라’·김호 정재승)
이런 표현 다 빼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비로소 통한다는 걸 모를 리 없는 똑똑한 사람들이 고집스럽게 자신을 방어하는 것은 십중팔구 피해자와의 다툼에서 불리해질 것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그런가? 그렇다면 아예 사과하겠다고 나서지나 말 일이다.
정경준 사회부장 news9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