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순영 시인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태극기를 챙겨들고 대문을 나서니 앞집에도 뒷집에도 골목 어느 집에도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았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교수고 사장이고 고위직 공직자인 걸로 알고 있다. 현충일만큼은 우리가 마음을 모으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생각하는 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6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돈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은 군대 안 가고, 군 복무 중에도 빠져나갔다고 한다. 어떤 이는 입대해서 병원에 들어가 있다가 제대하고, 어떤 이는 밀항으로 미국에 가서 박사학위를 받아와 장관이 됐다고 했으며, ‘못난 놈들’이 나라를 지킨다고 하니 한숨이 나온다. 이 나라에는 그 못난 놈들이 군대 가서 용감하게 싸우고, 법을 존중하고, 세금도 꼬박꼬박 낸다.
1952년 10월 11일 백마고지를 앞에 놓고 우군과 적군이 빼앗기고 되찾기를 거듭하던 중, 적이 퍼붓는 기관총을 막아내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강승우 소위가 오귀봉 하사와 안영권 하사와 함께 양손에 수류탄을 뽑아들고 총알이 빗발치는 적군 속으로 뛰어들어 재가 되었다. 투철한 군인 정신으로 삶을 마감한 이들이야말로 군인 중 참군인이요 이 나라의 주인이다.
전순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