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정윤철 기자의 파넨카 킥]‘강호 사냥법’… 선제골을 쏴라

입력 | 2016-06-07 03:00:00

슈틸리케호, 체코에 2-1 승… 유럽 원정서 얻은 교훈




5일 체코와의 평가전 직전 라커룸에서 승리의 결의를 다지고 있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가운데)과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단. 대한축구협회 제공

냉탕과 온탕을 오간 축구 국가대표팀 ‘슈틸리케호’의 유럽 원정 평가전이 모두 끝났다.

스페인에 참패를 당한 뒤 ‘우물 밖에 나간 개구리’로 불렸던 대표팀은 5일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체코전에서 2-1로 승리해 1승 1패의 성적을 거뒀다. 체코를 상대로 15년 전 0-5패배를 설욕한 대표팀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 부임 후 유럽 팀 상대 첫 승을 기록하며 자신감을 회복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0위인 대표팀은 ‘티키타카(짧은 패스 중심의 축구)’를 앞세운 스페인(6위)과 강한 몸싸움을 즐기는 체코(30위)와의 맞대결을 통해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등에 대비한 교훈을 얻었다.

체코전은 약체가 강호를 잡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선제골’에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대표팀은 윤빛가람(옌볜 푸더)이 전반 26분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뽑아낸 덕분에 경기를 쉽게 풀어나갈 수 있었다. 이후 석현준(FC포르투·전반 40분)의 추가골까지 터지면서 당황한 체코를 상대로 강한 전방 압박을 유지하며 리드를 지키는 수비적 운영이 가능했다. 스페인전에서 선제골을 얻어맞은 뒤 수비 조직력이 흔들렸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2016 유럽축구선수권을 앞두고 출정식을 겸해 열린 평가전에서 정예 멤버를 내세우고도 패배한 체코의 미드필더 토마시 로시츠키는 “한국의 저돌적인 축구에 무너졌다”고 말했다.

3년 8개월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윤빛가람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최우수 골키퍼에 선정된 체코 골키퍼 페트르 체흐를 상대로 프리킥 골을 터뜨리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그라운드의 모차르트’로 불리는 로시츠키의 공을 가로챈 뒤 석현준의 골에 도움까지 기록했다. 월드컵 본선에서는 상대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하고 나오기 때문에 기존의 핵심 선수보다는 ‘깜짝 발탁 선수’에 의해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슈틸리케 감독은 새롭게 대표팀에 합류시킨 선수들이 맹활약을 펼쳐 “캐스팅만 하면 대박이 난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윤빛가람이 그 역할을 해냈다. 윤빛가람과 스페인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터뜨린 주세종(FC서울)의 등장으로 슈틸리케 감독은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선수 운용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오늘 승리는 선수들이 상대와 적극적으로 맞선 결과다. 후반전에 상대 선수의 퇴장으로 수적 우세 속에서 공격적인 면이 부족했던 것은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체코전의 또 다른 소득 중 하나는 대표팀이 패배의 충격을 딛고 빠르게 정신력을 회복했다는 것이다. 스페인에 1-6으로 패한 뒤 4일 만에 치러진 체코전에서 대표팀은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2연패를 당했다면 가라앉은 팀 분위기가 9월 시작되는 월드컵 최종 예선까지 이어질 수 있었겠지만 위기를 극복하고 ‘위닝 멘털리티(winning mentality·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를 회복했다. 경기 전 슈틸리케 감독은 라커룸에서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선수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한 그는 “우리는 오늘 다시 시작하는 거야”라고 외쳤다.

5일 체코와의 평가전 직전 라커룸에서 승리의 결의를 다지고 있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가운데)과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단. 대한축구협회 제공

월드컵 본선에서는 조별리그 경기가 4, 5일 간격으로 열리기 때문에 연패에 빠지지 않고 짧은 시간에 정신력을 추슬러 승리하는 능력이 필수다. 체코전에서 주장 완장을 찾던 수비수 곽태휘(알 힐랄)는 “스페인전 후 선수들이 다같이 모여 미팅을 했다. 이때 ‘이렇게 경기를 지면 아쉽지 않느냐. 투지를 보여주자’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스페인전에서 대표팀이 팬들에게 가장 많은 질책을 받은 부분은 점수 차보다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체코전에서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죽만 먹고 경기에 나선 골키퍼 정성룡(가와사키 프론탈레)과 상대의 반칙으로 눈 위가 찢어져 ‘붕대 투혼’을 보여준 석현준 등이 몸을 사리지 않는 적극적인 경기를 보여줬다.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들이 스페인전 이후 정신적으로 100%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중요하다. 오늘 승리로 월드컵 최종 예선까지 좋은 분위기를 가져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정윤철기자 trig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