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처음 경찰서 찾은 168명 분석 방문 잠그고 “공부나 해” 윽박 지르는 부모… 가출-절도 위험 높아 “TV속 저 인간 재수 없어” 욕설 퍼붓는 부모… 분노조절장애 가능성
형사가 부모를 내보내고서야 김 양은 입을 열었다. “24시간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방 안에 갇혀 사는 기분이었어요. 성적이 떨어지면 수시로 방문을 걸어 잠그는 엄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김 양은 ‘감옥’이 돼 버린 집을 나와 평소 갖고 싶었던 물건을 훔친 것이다.
부모의 우울·불안심리도 아이들의 마음을 병들게 했다.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거나 가출해 폭력, 절도를 저지른 학생 76명은 가정에서 “짜증 난다”, “살기 싫다”는 부모의 말을 자주 들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한 적이 있는 이모 양(17)은 “부모는 항상 피곤해 보였고 사소한 물음에도 쉽게 짜증을 냈다”며 “엄마의 ‘살기 싫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자살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윤재진 마인드힐링연구소 대표는 “부모가 삶에 대한 불만과 부정심리를 그대로 표출하면 아이의 정서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녀와의 대화를 소홀히 한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들은 게임중독에 빠지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168명 중 게임중독에 빠진 52명은 부모와의 평균 대화시간이 하루 30분 이내였고, 맞벌이 가정의 자녀가 상당수였다. 밤늦게 귀가한 부모로부터 받는 질문은 “밥은?”, “학원은?”이 전부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채팅이 가능한 게임에 빠졌다. 우모 군(16)은 “무심한 표정의 부모에게 내 관심사를 얘기하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다”며 “대화하고 싶어 게임을 했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좋은 성적을 강요하는 것도 자녀의 절도, 학교 폭력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168명 중 28명은 성적이 떨어지면 가정에서 죄인 취급을 받다 평소 갖고 싶은 물건을 훔치거나 자신보다 공부 잘하는 경쟁자를 괴롭히는 폭력성을 보였다. 윤 대표는 “부모의 강압적인 교육방식이 아이들을 절도, 자살, 분노라는 감정에 무감각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정작 대부분의 부모는 경찰의 심리상담을 거부했다. 전체의 11.3%인 19명의 부모만 상담을 받았다. 나머지는 “우리 집 일에 무슨 상관이냐”는 식으로 상담을 거부하거나 비행의 원인을 아이의 정서적 문제로만 치부했다. 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과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부모들은 자녀에게 폭력적, 가학적인 언행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며 “부모 스스로 자신을 먼저 되돌아보는 것이 아이 치료의 시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