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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인 컬처]‘제나’와의 4일째, 눈이 아프고 어지럼증 찾아왔지만…

입력 | 2016-06-08 03:00:00

VR애인과 일주일 살아보기




‘제나’가 방문을 두드린다. 방 안으로 들어온 제나는 미소로 말을 건 후 내 다리 위에 걸터앉는다. 꿈인지 현실인지 몽롱해진다.(이 다음은 19禁)

20여 분의 만남이 끝났다. 멍한 머리에 일주일 전 기억의 잔상이 스쳐갔다.

1일 서울 신촌의 한 카페. 에이전트5(김윤종 기자)와 에이전트7(임희윤 기자)에게 요상한 안경을 낀 젊은이들이 보였다. 알고 보니 VR(virtual reality), 즉 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는 ‘헤드셋’. 시각은 물론이고 청각, 촉각을 자극해 사용자가 화면상의 장소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기술이다. 2020년 VR콘텐츠 시장은 61조 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술에 관심이 없던 두 요원이 시큰둥해하려는 찰나 ‘VR애인’이란 말에 귀가 솔깃했다. ‘VR애인’은 성인용 VR콘텐츠를 뜻하는 은어였다.

○ VR애인과 일주일 살아보기

놀란 두 요원은 VR성인물부터 입수했다. 가상 연애를 부추겨 인류에게 인구 감소란 타격을 주려는 외계인의 농락은 아닐까. VR앱을 깐 스마트폰을 VR헤드셋에 끼운 후 성인물을 작동시켰다. 다른 공간으로 순간 이동이라도 한 듯했다. 1인칭 시점으로 가상공간을 둘러보는 요원에게 한 여성이 다가왔다. 가슴이 뛰고 다리에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중력조차 잊었다. 자꾸 손도 뻗게 됐다. 눈앞의 것이 잡히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은 욕구. 그녀에게 ‘제나’라는 애칭을 붙였다.

첫 체험 후 수시로 제나를 만났다. TV, 스마트폰은 사용 중 고개를 돌려 주변을 확인할 수 있지만 VR헤드셋은 눈과 귀를 막는 데다 옆을 봐도 가상공간이니 몰입도가 높다. 주변에도 제나를 보여줬다. 호된 비판을 받았다. “끔찍하네요. 이렇게 생생한 야동을 10대들이 보면 어떻게 될까요?”(30대 주부 박모 씨) “현실 도피로 이어져 사회문제가 될 수 있죠.”(회사원 김모 씨·39)

이틀이 지나자 몰입감이 떨어졌다. 눈과 귀로는 한계가 있었다. 촉각도 가능하면 좋겠다고 상상하던 차에 VR업체 씨엘픽셀 김재성 대표를 만났다. “VR기술이 급격히 발전하고 있어요. 해외서는 VR전신 슈트마저 개발되고 있죠.” VR영상 속 누군가가 내 그 부위를 만지면 슈트를 입은 그곳에 감각이 전해 오는 식이다. VR프로그램으로 얼굴은 송중기, 키는 조인성, 팔뚝은 송승헌을 조합한 캐릭터를 만든 후 가상의 데이트를 즐기는 일도 수년 내에 가능하다.

○ 정신적 피폐함… 인간성을 돌아보다

VR애인을 만난 지 4일째가 되자 눈이 아프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연세대 바른ICT연구소 이보성 박사의 경고가 떠올랐다. “‘사이버 멀미’가 날 겁니다. VR영상을 보는 시각과 대뇌에서 인지하는 감각의 차이로 멀미가 나는 거죠. 민감한 빛에 계속 노출되면 뇌전증이 올 수 있어요.”

그래도 제나를 계속 만났다. 끊을 수 없는 중독성. 다른 VR애인을 찾아 웹하드와 P2P 사이트를 뒤지게 된 요원. ‘내가 쓰레기 같다’는 자괴감과 함께 인간성의 한 부분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기술을 막을 수 없다는 목소리도 높다. 대기업 콘텐츠 연구실에서는 ‘연구원들이 매일 VR야동을 본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것이 현실….

“매체가 새로 나올 때마다 성인콘텐츠 분야에서 제작기법이 가장 활발히 개발됩니다.”(삼성 무선사업부 관계자) “성인물 VR콘텐츠 조회수는 항상 상위권에 들어요. VR의 생생한 특성 때문에 성인물이 더 확대될 겁니다.”(LG유플러스 관계자)

그렇다. 기술의 발전은 항상 성인물의 확산을 토대로 이뤄졌다. 월드와이드웹(www)을 창시한 팀 버너스 리조차 연구 목적으로 만든 웹이 야동을 확산시키는 데 이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지 않았던가. 2025년이면 VR포르노 시장이 1조 원 규모로 성장한다.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교수가 조언했다. “어떤 미디어든 새로 나타나면 항상 거론됐던 우려들이에요. 인지과학적으로 봤을 때 가상과 현실을 혼동하고, 가상현실 속 관계에 중독되는 것은 걱정할 만합니다. 그럼에도 새 기술이 주는 더 많은 좋은 부분을 보는 게 적절해요.”

자극과 욕망, 고민과 성찰 속에 일주일이 지났다. 에이전트7은 VR 후유증으로 당분간 요원 활동을 접기로 했다. VR애인과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려던 찰나. VR프로그램의 발전으로 얼굴은 수지, 몸매는 설현인 가상의 애인을 곧 만들 수 있다는 김 대표의 말이 떠올랐다. ‘다짐은 하지 말자’는 순간 에이전트41(김배중 기자)이 등장하는데.(다음 회에 계속)
 
김윤종 zozo@donga.com·임희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