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는, 우리, 김치찌개를 맛나게 해 먹자’ 하셨다면, 모두가 이 닦고 세수 얼른 하고, 풍로에 숯불을 피운다, 부채질을 한다, 하고 부산을 떨었다. … 아버지가 늘 말씀하시는 서른두 번 씹고 넘길 동안 입안에서 고루 느껴지는, 더운밥에 김치찌개의 고 맛이라니.”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소시지 베이컨에 통김치를 익힌 찌개. 그러잖아도 입맛이 다셔지는데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의 냄새가 밴 아침식사가 어찌 맛깔스럽지 않을까. 평전 ‘소설가 구보씨의 일생’에서 작가 박태원은 이렇듯 자식들에게 소박하고도 훈훈한 기억을 안긴 아버지로 그려진다.
평전의 저자인 아들 박일영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한다. 박태원의 결혼을 앞두고 ‘절친’ 이상(李箱)이 친구와 어울리는 시간이 확 줄어들까 봐 전전긍긍했다는 대목은 짐짓 남 얘기를 하듯 유쾌하다.
자녀를 사랑한 평범한 가장이면서도 생의 굴곡도 감내해야 했던 사람이 작가 아버지였음을 아들의 기록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태원뿐일까. 최근 나온 대산문화 여름호에도 문인 아버지를 추억하는 자녀들의 글이 실렸다. 청록파 시인 박두진의 아들인 화가 영하 씨는 아버지가 자주 손을 잡아준 기억을 되살린다. “손잡음으로 모든 사랑과 얘기를 대신해 주셨다.”
설창수 시인의 딸 호정 씨는 5·16군사정변 이후 사회 활동이 사실상 금지되면서 생활인으로 살 수 없었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버지가 그 다음 생을 이미 받았다면, 다섯 감각 기관이 예민해야 하고, 세상을 거꾸로 보았다 뒤집어 보았다 해야 하는 예술 같은 거 말고 고요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데에 집중하고 계시기를 빈다”고 소망했다.
시조시인 최은희 씨가 병고에 시달리던 소설가 아버지 최태응의 일기에서 엿본 기도는 이렇게 절절하다. “주님, 단 몇 달이라도 개운한 몸, 맑은 정신, 피로하지 않은 팔목으로 온전히 내 뜻대로 무엇이든 써 보고 죽게 해 주옵소서!”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