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달 사회부 기자
7일 오전 10시 서울시청 브리핑룸. 박원순 시장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지난달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숨진 김모 씨(19)와 유족, 시민을 향한 사죄였다. 박 시장은 “시장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무력감으로 부끄럽다”고 자책했다.
고개 숙인 박 시장 뒤로 약 1년 전 그의 모습이 오버랩 됐다. 지난해 6월 4일 오후 10시 45분 박 시장은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35번째 메르스 환자가 1500여 명이 참석한 재건축조합 행사에 갔다. 정부의 초기대응 실패가 사태를 확산시켰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시민안전’을 위해 참석자 전원에게 즉각적인 격리 조치도 내렸다.
그러나 1년이 지나 구의역 사고를 대하는 박 시장의 행보는 사뭇 달라 보였다. 사고로 죽은 김 씨는 ‘비정규직 청년’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의 죽음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기에만 급급했다. 박 시장도 사고가 난 다음 날 프로축구 시축을 했고 사흘이 지나서야 사고 현장을 찾았다. 중간 중간 내놓은 사과와 대책도 새로운 것이 없었다.
오죽하면 ‘대권에 정신이 팔려 시정을 등한시한다’는 비난이 쏟아질 정도였다. 7일 이뤄진 박 시장의 사과는 이런 여론에 떠밀려 두 손 들고 투항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시민들은 박 시장이 구의역 사고를 처음에 ‘단순한 사고’ 정도로 생각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박 시장의 말처럼 이번 사고는 ‘소 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못한 사고’였기에 더 황망하다. 최근 3년간 시간과 장소 사람만 다를 뿐 비슷한 사고가 세 차례나 되풀이됐다. 하지만 서울시가 내놓은 대책은 허울뿐인 탁상공론이었다.
7월이면 박 시장은 민선 6기 임기의 반환점을 돈다. 이번 사고로 ‘같은 인재(人災)를 왜 수없이 반복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찾아야 한다. 더이상 시민의 생명과 안전까지 위협하는 비정상적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시민의 입장에서 뭐가 중요한지 따져보고 뼈를 깎는 각오로 혁신해야 한다.
조영달 사회부 기자 dalsar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