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두 스포츠부장
예나 지금이나 많은 스포츠 선수들은 인터뷰 때 “좋은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다. 은퇴 시기가 다가오는 스타 선수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하지만 선수들에게 은퇴 결정은 어린 시절 운동을 시작하기로 결심하는 것 못지않게 힘들다. 선수들의 수명이 길어진 프로 스포츠 종목 선수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다 보니 한때 많은 팬을 보유하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스타 선수일수록 은퇴시기를 놓고 소속 팀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팀과 힘겨루기를 하느라 경기에도 나서지 못한 채 은퇴를 미루는 사이 스타 선수를 그저 그랬던 선수 중의 한 명으로 기억하는 팬들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김응용 감독처럼.
그런 면에서 메이저리그는 벤치마킹할 만한 좋은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마무리 투수로 꼽히는 마리아노 리베라는 2013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고 선언했다. 당시 메이저리그 데뷔 19년 차로 44세의 나이였지만 리베라는 여전히 소속 팀 뉴욕 양키스의 주전 마무리 투수였다. 2013년 시즌 내내 양키스의 원정경기에는 대부분 만원 관중이 들어찼다. 리베라의 마지막 투구와 작별 인사를 직접 보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은 것이다. 2012년 애틀랜타의 치퍼 존스가 시작한 이른바 ‘은퇴 투어’는 리베라에 이어 2014년에는 양키스의 주장 데릭 지터가 이어받았다. 지터 역시 주전 유격수로 원정경기에 출전해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많은 관중에게 전성기 못지않은 기량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리베라와 지터는 모두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이벤트식의 경기를 치르지 않았다. 당당히 실력으로 은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경기에 출전했다. 최고의 전성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기량이 내리막을 타기 전에 은퇴를 결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리베라와 지터는 모든 선수들이 바라는 좋은 선수로 영원히 팬들의 기억에 남게 됐다.
이현두 스포츠부장 ruch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