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이게 모두다. … 내 인생은 엉망이 되었다.’ 박현욱의 장편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의 첫머리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하는 글도 나왔다. ‘아내가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불과 5일 만에.’ 소설 같은 긴박감을 불러일으킨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7일 ‘윤창중 칼럼세상’에 올린 글의 첫줄이다. 2012년 12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이 되면서 블로그를 중단했던 그가 인터넷 글쓰기를 재개했다.
▷윤창중은 2013년 5월 박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국인 미국에서 여성 인턴 성추행 의혹으로 도망치듯 중도 귀국한 뒤 직권 면직됐다. 당시 미국 뉴욕타임스가 그에 관한 기사를 세 차례나 게재할 정도로 떠들썩하게 나라 망신을 시켰다. 박 대통령의 방미 성과가 뭔지는 몰라도 윤 전 대변인의 꼴불견 행태는 미주알고주알 알려졌을 정도다. 이후 그는 두문불출하며 집에 자진 유폐(幽閉)하다시피 했다.
▷당시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새 정부 초기에 많은 국민으로부터 질책받은 게 인사 실패였다”며 “윤창중 뭐 같은 그런 사람을 기용했다는 데서 비난을 받았다”고 개탄했다. 정작 윤창중은 공소시효 3년이 넘도록 미국 검찰이 자신을 기소하지 않은 것은 죄가 없기 때문이라며 “인생사 그야말로 사필귀정임을 절감한다”고 했다. 한미 관계를 감안해 불기소됐다는 배경을 언급하지 않은 건 물론이다. 그렇게 당당했다면 왜 진작 세상에 나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윤창중은 기자→노태우 대통령 행정관→기자→이회창 후보 언론담당 보좌역→논설위원→방송인→청와대 대변인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지금은 자신의 존재 이유가 글을 쓰는 것이고 죽기 전에 한을 푸는 공정한 기록을 남기겠다며 글의 제목을 ‘내 영혼의 상처, 윤창중의 자전적 에세이’로 붙였다. 첫 회분에서 그는 3년간 억울한 귀양살이를 강요당한 피해자로 자신을 묘사했다. “대한민국 언론과 그 언론의 뒤에 숨어 있는 음해세력이 컬래버레이션(공동작업) 한 인민재판, 여론재판, 인격살인!”이라고 비난한 그의 기록이 과연 공정한지 의문이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