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산업의 쇠퇴와 함께 에로 영화의 시대는 끝난 줄로만 알았는데, 여전히 에로를 외치는 인물들이 나타났다. 에로 영화계의 대부 봉만대 감독, 그리고 지금 가장 ‘핫’하다는 공자관 감독과 나눈 19금 토크.
봉만대 BONG MAN DAE
“혹시 페미니스트예요?” 자신이 그리는 영화에 대한 철학을 늘어놓던 그가 처음으로 당황했다. ‘에로 영화의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음에도, 그의 영화는 자극적인 장면을 원하는 남성 팬들에게 ‘밋밋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B급 장르를 추구하는 A급 감독 봉만대(46)다.
▼ 감독님을 두고 ‘에로계의 거장’이라고들 해요.
90분 이상 이어지는 남녀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어찌 보면 굉장히 뻔해요. 사랑했느냐 사랑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 결국 사랑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귀결되는 내용이죠. 저는 에로틱을 기반으로 사랑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 어떤 남자들은 감독님 영화는 야하지가 않대요.
제 영화는 ‘발기’를 유도하기 위한 게 아니에요. 그건 포르노죠. 가끔 ‘에로 영화치고 너무 심심한 것 아니냐’고 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러면 안 보셔도 돼요. 제가 만들고 싶은 건 남녀가 손잡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예요.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랑을 나누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을 위한 거죠.
▼ 에로 영화와 포르노의 가장 큰 차이는 뭔가요.
에로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감정을 가지고 있어요. 대사 하나, 행동 하나에 이유가 있죠. 포르노를 원하는 사람은 긴 스토리를 모두 보려고 하지 않잖아요. 짤막한 클립 영상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끼니까요. 지극히 남성의 만족을 위한 방식으로 제작된 게 포르노예요. 저는 그런 영상은 되게 불편하더라고요.
▼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나요.
글쎄… 에로 영화 감독이 페미니스트라니.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이네요. “감독님은 여자를 좀 아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긴 하죠. 폭력적이거나 가학적인 장면은 못 견디겠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지금껏 에로 영화를 만들면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전 여자의 곡선을 갈망할 뿐이지 애초에 직선적인 건 찍지 않으니까.
▼ 영화에서 에로틱함을 연출하기 위한 장치는 뭔가요.
제 영화엔 발 연기가 많이 나와요. 굉장히 집착하는 편이죠. 캐릭터의 오르가슴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교성을 세게 낼 수도 있고, 손이 움츠러드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죠. 그런데 저는 발가락이 구부러지는 게 굉장히 야하게 느껴져요. 원래 사람들은 다른 이에게 자신의 발을 보여주는 걸 굉장히 부끄럽게 생각하잖아요.
그 시절 저는 굉장히 혈기왕성했죠. 지금은 꽃이 보이고 바람이 느껴지고, 빗소리도 아름답게 들려요. 아내와의 사랑도 섹스의 유희에 탐닉하는 것에서 점점 로맨스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었고요. 자연스레 ‘에로라는 건 뭘까’ 하고 고민한 것 같아요. 나이 들어 호르몬 분비가 바뀌어서 그런가(웃음). 모든 사람은 살아온 환경에 따라 가치관이 변하잖아요. 저는 제가 만들어온 토양에 나무를 심는 거예요. 세월이 지나 토양이 달라졌으니 심는 나무도 열리는 과실도 달라질 수밖에 없겠죠.
▼ 봉만대식 에로는 뭔가요.
저도 몰라요. 계속 방황하고 있어요. 요즘은 봉만대라는 토양이 어떤지를 알기 위해 유년의 제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 돌이켜보고 있어요. 그래야 무슨 나무를 심을지 결정할 수 있잖아요. 올해 1월 21일에 오른쪽 팔에 미키 마우스 문신을 새겼어요. 원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송편을 굽다가 덴 자국인데,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했던 유년기를 상징하는 상처였죠. 어느 날 한 여자가 미키 마우스 티셔츠를 입고 지나가는 걸 봤는데 심장이 뛰는 거예요.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해봤더니 아르바이트를 해서 첫 월급으로 산 게 미키 마우스 제품이었더라고요. 그러니까 이 문신은 어린 시절 힘들게 살았던 저에 대한 보상이자, 유년의 순수성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 감독님의 첫사랑은 어땠나요.
여러모로 땀 흘렸던 시기였죠(웃음). 처음엔 손 한번 잡는 데도 진땀을 뺐을 정도로 숙맥이었거든요. 엉덩이까지 가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요. 그녀의 속살보다는 달빛에 반사돼 눈부시게 새하얀 팬티가 좋았어요. 가끔 촬영 때 여배우들은 호피 무늬 속옷을 입겠다고 하는데 저는 무조건 흰색이 좋다고 해요. 조명을 치기에도 좋고 뭔가 깨끗하고 순수한 느낌을 주잖아요. 어쩌면 이게 나를 배신한 첫사랑에 대한 보상 심리일 수도 있고요.
▼ 김구라 씨 출연으로 화제가 됐던 〈떡국열차〉 제작이 중단됐다는데.
주연 배우인 김구라 씨의 출연이 불투명한 상태예요. 사실 〈떡국열차〉가 애초부터 김구라 씨를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은 아니에요. 구라 씨가 잠시 활동을 쉬던 때 먼저 하겠다고 해서 이틀에 걸쳐 촬영을 진행했죠. 그것도 무보수로. 요즘은 워낙 바쁘셔서 다음 편 촬영하자는 말도 못 꺼내고 있어요(웃음). 구라 씨가 아니면 〈떡국열차〉 속편은 없어요. 이미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약속을 한 상태거든요.
▼ 영화 〈그녀는 관능소설가〉도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다고 들었어요. 촬영은 시작했나요.
2년 넘게 시나리오를 쓴 작품인데, 현재 배우를 물색 중이에요. 배우 라미란 씨는 “봉 감독 작품이면 언제든 오케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제가 찾는 대상은 아닌 것 같아요(웃음).
가끔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머릿속에 여배우 얼굴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그런 배우를 딱 만나면 좋으련만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아내가 “여보, 나는 얼굴이 동그란 편인데 왜 당신은 얼굴이 갸름한 사람만 써?”라고 묻더라고요. 저도 몰랐는데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의 김서형 씨나 〈신데렐라〉의 도지원 씨나 다들 얼굴이 갸름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서구적인 외모를 찾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 7월엔 어른들의 놀이터인 ‘센스봉’을 만든다면서요.
에로라는 장르를 양지로 끌어올리기 위한 시도 중 하나예요. 박물관이나 성인용품 숍 개념보다는 아티스트와 콜래보레이션한 성인용품을 전시하는 등 좀 더 다채로운 것들로 꾸밀 예정이에요. 누구든 와서 성적 호기심으로 노크할 수 있도록요.
GONG JA KWAN 공자관
그는 에둘러 말하는 게 싫다고 했다. “저 ‘떡’ 영화 합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젊은 엄마〉 〈친구 엄마〉 등 〈엄마〉 시리즈로 에로 영화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공자관(39) 감독과의 아슬아슬한 인터뷰.
장모와 사위의 사랑을 그린 영화 〈젊은 엄마〉, 아들의 친구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친구 엄마〉. 금지된 사랑을 소재로 한 비슷한 제목의 두 영화는 공교롭게도 공자관(39) 감독의 작품이다. 일명 〈엄마〉시리즈는 주문형 비디오(VOD)나 인터넷 티비(IPTV) 시장에서 엄청난 선전을 보이며 한국 에로 영화 시장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대학에서 정식으로 영화 연출을 전공한 그가 정공법을 택하지 않고 왜 에로에 빠져들었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 〈엄마〉 시리즈로 대박이 났어요. 제목만 봐도 떨리는데 대박 비결이 뭔가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잖아요. 부부나 연인들의 섹스를 보여주는 건 에로 영화에서 별로 큰 흥밋거리는 못 된다고 생각해요. 관객이 ‘어머, 이런 것까지?’ 할 수밖에 없는 소재라 많이 봐주신 것 같아요.
▼ 처음 에로 영화를 본 게 언제예요.
고등학교 2, 3학년 때쯤이었어요. 힘들게 비디오를 구해서 몰래 보는데 하나도 재미가 없더라고요. 뭔가 나올 것 같은 장면에서 카메라가 이동하더니, 꽃병이 가리고 침대 기둥이 가리고. ‘우리나라 영화는 이래서 안 돼’라는 생각이 들었죠.
▼ 에로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같은 과(단국대 영화학과) 친구들과 단편 영화를 준비하려고 모였다가 ‘영화나 보자’면서 비디오 가게에 갔어요. 제대하고 얼마 안 지났던 때라서인지 왠지 눈길이 에로 비디오 칸에 꽂히더라고요. 그때 본 〈쏘빠때 2〉(쏘시지가 빠다를 만났을 때의 줄임말)를 정말 재밌게 봤죠. 그래서 이렇게 재밌게 에로 영화를 만드는 영화사가 어딘지를 찾아보고는 여기서 일하고 싶다며 덜컥 이메일을 보냈죠.
▼ 첫 직장은 마음에 들었나요.
솔직히 그땐 에로 영화계를 무시했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에로계로 가면 쉽게 감독이 될 줄 알았어요. 면접을 보러 갔더니 비디오를 몇 편 주면서 영화 감상문을 써오라는 거예요. ‘될 대로 돼라’ 하면서 안 써버렸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대책 없는 청춘이었죠. 연락이 안 올 줄 알았는데 일주일쯤 후에 출근하라는 전화를 받았어요.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아는 건 전혀 없더라고요. 현장에 내던져져 일하면서 배우기 시작한 거예요. 돈을 받으면서 일을 배웠으니 속된 말로 잘 풀린 케이스죠.
▼ 첫 촬영은 어땠어요.
베드신 촬영 때 별로 놀라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여배우의 알몸을 눈앞에서 보니 정말 충격이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그땐 한창 혈기왕성할 때라 그런지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그렇게 조감독으로 입사해서 한 달에 한 편씩 영화를 만들었죠.
▼ 그때에 비해 에로 영화계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에로 영화계에도 팬덤 문화가 있었어요. 30대 중반부터 40대 초반의 사람들에게 배우 하소연과 은빛에 대해 물어보면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발하지도 않았을 땐데 포털 사이트 팬 카페에 회원수만 5만 명이 넘었으니까요. 팬 미팅을 하면 중견 사업가부터 여고생까지 찾아왔었죠. 배우들과 함께 교도소 위문 공연을 간 적도 있어요.
▼ 영화 말고 다른 성인 콘텐츠 제작도 해왔다고 하던데.
성인용 게임에 필요한 영상을 제작하는 일도 하고, 3D 성인용 제작물의 연출을 맡기도 했죠. 훨씬 현실감 있는 피사체를 구현할 수 있을 거라고들 했는데 연출자 입장에선 재미가 없었어요. 영상에만 집착하다 보니 내러티브에 한계가 있더라고요. 일부러 배우가 도망가는 상황을 설정하고 카메라 쪽으로 다가오게 만들어야 했죠. 유치하고 단순하게 느껴졌어요.
▼ 에로 영화를 만드는 데 원칙이 있나요.
‘영화처럼 만들지 말자’요. 가끔 배우들은 영화 속에서만 나올 법한 대사를 하잖아요. 오글거리는 말을 맛깔스럽게 치면 좋은 배우고, 그게 티가 나면 부족한 배우죠. 저는 제가 읽어봤을 때 티가 나면 대사를 다 바꿔요. 물론 100분 내내 영화 같은 대사 한 줄 없을 순 없겠죠. 〈친구 엄마〉에도 ‘나 그래도 너 아빠라고 안 부른다’라는 대사가 나오긴 하거든요.
▼ 2007년 영화 〈색화동〉으로 충무로에 데뷔했어요. 개봉작은 심의가 까다롭지 않던가요.
여성의 음부에 무생물을 넣는 행위를 보여주어서는 안 되고, 남자가 사정한 체액이 나오면 안 된다는 이유로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적이 있어요. 사실 영화 심의와 영상 콘텐츠 심의, 인터넷 심의 기준이 조금씩 달라요. 영화보다 영상 콘텐츠의 심의 규정이 더 까다로운 편이죠. 가령 음모 부위에 블러 처리를 했을 때 영화부에서는 통과되더라도 영상 콘텐츠에서는 ‘제한 상영가’를 내주는 식이죠. 극장에선 청소년들을 더 거를 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 촬영장 분위기가 후끈하다 보면 가끔 실제로 연애하는 사람들도 생길 것 같아요.
배우끼리 결혼하는 커플을 두 번 봤어요. 언젠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을 보는데 예전에 함께 작업했던 배우가 엄마로 나오더라고요. 상대 배우와 결혼해서 애도 둘이나 낳았더라고요. 아마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커플들이 더 많겠죠.
▼ 배우들은 어떻게 캐스팅하나요.
에로 배우를 섭외하는 전문 매니저가 따로 있어요. 영화 제작 들어가기 한두 달 전에 그 매니저에게 이야기를 해서 소개받는 식이죠. 관객들은 항상 뉴 페이스를 원해요. 새로운 여자가 벗길 원하거든요.
▼ 촬영장에서 생긴 난감한 상황은 없었나요.
베드신 촬영 중 남자 배우가 발기가 되어서 촬영이 중단된 적이 있어요. 베테랑은 조절이 가능한데 신인 배우들은 그게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친구 엄마〉를 찍을 땐 삼척에서 촬영을 했는데 군 비상사태가 발생해서 촬영이 지연된 적도 있어요. 보안각서를 적고 나서야 촬영할 수 있었죠.
▼ 감독님의 첫사랑은 어땠나요.
대학 때 만난 옆 학교 학생이었어요. 무거운 짐을 들고 가기에 들어주겠다고 하고는 집 앞까지 쫓아갔었죠. 그 여학생에 대해 아는 거라곤 집 주소밖에 없었는데 며칠 뒤 대학 동기랑 술을 먹다가 생각나서 친구와 함께 무작정 그 집으로 찾아갔어요. 근데 알고 보니 그녀가 쌍둥이였던 거예요. 2 대 2로 재밌게 놀았죠 뭐. 그때 제 지원군이 돼준 친구가 개그맨 김준호예요. 첫사랑과 석 달 정도 사귀고 헤어졌죠.
▼ 〈엄마〉 시리즈의 마지막 완결판은 언제 나오나요.
글쎄요. 대미를 장식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요즘 아류작이 너무 많이 나와서 고민이에요. 남들이 하는 건 하기 싫으니까요. 나온다면 제목은…. 〈마지막 엄마〉 어때요?
글 · 정희순 | 사진 · 조영철 지호영 기자 디자인 · 김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