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사설]차기정권에 조선·해운 부실폭탄 돌리는 게 구조조정인가

입력 | 2016-06-09 00:00:00


정부가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위해 11조 원 규모의 자본확충펀드를 만들어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에 지원하기로 했다.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의 조선 3사는 2018년까지 인력 30% 감축 등 10조3500억 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이행해야 한다. 어제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이 같은 구조조정 추진계획을 확정하고 부총리 주재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 장관회의’를 2년 한시의 공식 회의체로 구성해 구조조정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다고 발표했다.

유 부총리는 “해운·조선업 구조조정은 철저한 자구계획 이행, 엄정한 손실분담 원칙하에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발표는 조선 3사와 한진해운, 현대상선의 양대 국적선사를 모두 끌어안아 다음 정권에 넘기겠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 선언과 다름없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한 대출로 은행 자본을 늘려주는 방식은 국회 동의도 없이 혈세를 꺼내 쓰는 ‘특혜금융’과 마찬가지다.

물론 정부는 자본확충펀드에 대해 은행 부실을 막기 위한 ‘비상재원’일 뿐이라며 대우조선 등 부실기업을 신규 지원하는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자구노력에 시간이 필요한 만큼 그때그때 자금 지원을 판단할 수 있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조선업계 노동조합이 사측의 자구안에 거세게 반대해 계획대로 진행될지도 미지수다. 결국 세금을 얼마나 퍼부어야 할지도 모르는 부실 처리 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긴 셈이다.

조선 3사와 양대 선사의 막대한 부실을 방조해온 산은과 수은에 대한 구조조정도 발표했으나 몸집 줄이기 정도에 불과하다. ‘산피아 근절’ 방침도 밝혔지만 감독 소홀로 부실을 키워온 책임은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국책은행장으로, 사외이사로 낙하산을 보내온 정부가 이제 와서 산피아를 근절하겠다니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메트로에 낙하산 사장, 이사, 감사를 내려보내고는 안전사고가 터지자 뒤늦게 ‘메피아 근절’을 외친 것과 무엇이 다른가.

부실덩어리의 기업을 당분간 연명시키는 것을 구조조정이라고 포장한 이면에는 정치적 압력이 엿보인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대우조선 지원은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폭로했다. 낙하산 인사였던 그가 거대 부실에 선제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모면하려고 변명하는 건 틀림없다. 그럼에도 정부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는 그의 고백은 ‘채권단 중심, 시장원리의 구조조정’을 천명해온 정부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때마침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은 어제 대우조선과 산은을 동시에 압수수색했다. 1987년부터 지금까지 공적자금과 국책은행 자금 7조 원을 지원받고도 지난해 말 부채비율7308%를 기록한 대우조선의 부실 경영과 분식회계, 정관계 로비 의혹은 진작 파헤쳤어야 할 일이다. 1월 출범한 특별수사단이 구조조정 대책 발표 당일에야 수사에 나선 것이 맹탕대책에 대한 국민적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라면 국민을 너무 얕잡아 봤다.

무엇보다 이번 정부 발표는 한국 경제 경쟁력 제고라는 큰 그림 없는 근시안적 대책이라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조선업은 일시적인 부진에 빠진 것이 아닌 구조적 불황에 빠진 상태다. 그런데도 정부는 “시스템 리스크를 초래할 대외 리스크는 없는 상황”이라는 안이한 인식으로 다음 호황기를 기다릴 태세다. 좀비기업의 환부만 덮은 채 다음 정권으로 폭탄을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할 게 뻔하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이주열 한은 총재, 안종범 대통령정책조정수석, 강석훈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 이번 대책의 주역들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전에 구조조정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