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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의 휴먼정치]가장 위험천만한 南南분열

입력 | 2016-06-09 03:00:00


박제균 논설위원

“행정부와 의회가 중국이 대북제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압박하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다. 우리 외교정책도 중국의 달라진 G2 위상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수정돼야 한다. 중국의 대북제재를 압박하기 위해 의회가 원자력협정 중단 법안을 발의한 것은 재검토돼야 한다.”

美日언론, 외교에 한목소리

미국 언론이 7일 끝난 미중(美中) 전략경제대화를 비판한 것을 가상해 본 기사다. 그러나 미 유수 언론에서 이런 논조의 기사나 사설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세금 문제 같은 경제정책이나 동성애와 낙태 등 각종 사회정책은 혹독하리만치 후벼 파는 미국 언론도 국익이 걸린 민감한 외교안보 사안에서는 한목소리를 낸다. 일본 언론은 한술 더 뜨고, 사회주의 중국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국 언론만이 외교안보 문제에서도 ‘거리낄 것 없는 언론자유’를 구가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도입과 개성공단 폐쇄는 물론 천안함 폭침 같은 피격 상황에도 정반대 논조의 기사가 나왔다. 언론 자유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민감한 외교안보 기사를 다룰 때는 국익의 무게와 교량(較量)하는 것이 언론의 기본 자세다.

언론부터 이러니 사드의 영어 약자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도입해야 되느니 마느니, 미사일방어 효과가 있느니 없느니’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에 사드 배치를 두고 기싸움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이 이런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면 얼마나 한심할까.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감을 느낀다.

정부 부처도 제각각이다.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외교부와 통일부의 속내가 같은 경우는 드물다. 전통적으로 외교부는 미국에 경도된 시각으로 정책을 바라본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에 일본 전문가는 많지만 한국 전문가는 드물다. 미국도 일본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한국을 보는 경우가 많다. 외교부 시각이 미일 중심일 수밖에 없다.

통일부는 대북 화해협력이 부처의 ‘존재 이유’지만 힘도, 정보도 없다. 외교부의 파워에, 국가정보원의 정보에 밀릴 수밖에 없다. 통일부가 외교부보다 셌던 적이 있다. 노무현 정권 때다. 한국의 위상과 외교 현실을 무시한 ‘동북아 균형자론’이나 ‘북핵은 자위수단’이라는 황당한 대통령 발언이 나왔다. 통일외교 정책의 엇박자를 막으려면 결국 외교부와 통일부를 유기적으로 통합해야 한다.

국정원은 또 어떤가. 연간 2조 원에 가까운 예산을 쓰는 것으로 ‘알려진’ 방대한 조직이지만 예산 명세를 아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기업으로 치면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공룡이다.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 조정하기 위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NSC 상임위원장인 국가안보실장에 연달아 군 출신이 앉으면서 제 역할을 못한다는 소리가 높다. 초대 김장수, 2대 김관진 실장은 유능한 군인이었을지 몰라도 외교안보를 총괄할 정책 좌장감은 못 된다.

안보 분열은 파멸의 길이다

이념 갈등까지 혼재된 안보정책 남남 분열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골이 깊다. 문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느냐 마느냐는 갈등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 굳이 임진왜란 때 동인과 서인, 병자호란 때 주화파와 주전파의 싸움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나라를 파멸의 길로 몰아넣을 수 있다. 적어도 내년 대선만큼은 각 주자들이 선명한 외교안보 정책을 내고, 치열하게 맞붙는 ‘안보 대선’이 됐으면 한다. 격론의 용광로 속에 남남 분열을 태우고 새로운 시대를 맞을 수 있도록.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