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광화문에서/김영식]작은 발걸음, 큰 도약

입력 | 2016-06-09 03:00:00


김영식 정치부 차장 spear@donga.com

북한이 쿠바와 수교한 것은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이듬해인 1960년 8월이었다. 상주 대사관을 개설하기 위해 수도 아바나를 방문했던 북한 대표단은 체 게바라의 주선으로 쿠바의 한인 사회와 접촉했다.

쿠바에는 1905년 멕시코 애니깽(헤네켄·용설란) 농장에 노예계약으로 끌려갔다가 자유를 얻은 뒤 새로운 기회를 찾아 이주해온 한인들이 있었다. 수교 후에도 북한 대사관 직원들은 한인 가정을 방문해 이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했다. 남북 간 이데올로기 경쟁이 치열하던 냉전 시절이었다. 북한은 ‘조선’ 등 잡지를 제공했다. 정체성을 찾기 위해 한글을 배우고 싶어 했던 한인 후손들로서는 이런 접촉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북한 대사관이 느닷없이 이들과의 관계를 끊었다. 한인 가정을 방문했다가 열어 본 사진첩에서 1920년대 초반에 고국의 독립운동 소식에 고무된 이들이 아바나 시내에서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본 것이 계기였다.

“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태극기를 발견한 뒤 갑자기 ‘반동이구먼’이라며 펄펄 뛴 뒤에 관계가 단절됐습니다.”

헤르니모 임 씨가 12년 전 아바나에서 기자에게 들려준 얘기다. 사실은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1920년대 초반, 태극기는 대한제국의 상징이었다. 남북이 갈라지기 전, 북한의 인공기가 만들어지기 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임 씨는 “역사를 몰랐던 대사관 직원들이 태극기는 남한의 국기라고만 지레짐작하고 쿠바 한인이 남한 편을 든다고 단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최근 북한 압박 외교를 위해 아바나를 방문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기억 저편에 있던 이 얘기가 다시 떠올랐다. 이젠 북한의 우방국인 쿠바에서도 남북의 위치가 역전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들었지만, 윤 장관이 “개인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 큰 도약이라는 말처럼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쿠바 방문”이라고 한 말에 닭살이 살짝 돋았기 때문에 과거 일이 더 선명하게 기억났던 것 같다. 고 이만섭 전 국회의장도 2001년 쿠바를 방문해 카스트로와 넌지시 수교 얘기를 나눴는데…. 아마도 한국 외교부 장관으로선 처음 쿠바를 방문한 윤 장관의 개인적 소회가 컸기 때문에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언급에 견주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12년 전, 애니깽 농장에 끌려갔던 선조들의 얘기를 취재하고 쿠바를 떠날 때의 색다른 기억도 생생하다. 비행기에 탑승했더니 누군가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자리가 맞냐’고 묻자 옆자리로 옮겨간 이들은 북한 대사관 직원들이었다. ‘태극기 사건’ 얘기를 떠올리며 ‘쿠바에 한인 후손들이 있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다. 넌지시 ‘생산지에선 농산물이 썩는데도 도시에는 공급이 제대로 안 되는 쿠바의 유통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개인한테 돌아오지 않으니 그게 잘 되겠냐”고 했다. “그럼 북한은 어떤데…”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이들이 입을 닫아 더 이상의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여전히 북한은 유통뿐 아니라 핵실험 등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로 식량 및 물자 공급에서도 차질을 빚고 있다. 그런데도 북한 방송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위대한 발걸음’을 되풀이하며 핵보유국 반열에 올랐다는 주장만 하고 있다. 북한이 원하는 큰 도약을 위해선 핵 대신 주민들을 위하는 작은 발걸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과연 언제쯤이나 알게 될까.

김영식 정치부 차장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