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를 흐르는 천(川) 있지? 그 다리 아래서 인민재판이 열리는 걸 보았어. 그리고 효수된 머리를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했지. 집집마다 보초 설 남자를 한 명씩 차출하는 바람에 어린 내가 죽창을 들고 밤에 보초를 서기도 했어. 우리 집에는 누님만 있어서 나갈 사람이 없었거든. 무섭고 끔찍했지. 평생 트라우마가 되었어.”
전쟁이 한 소년의 기억을 그렇게 잿빛으로 만들었다. 그분보다 한참 어린 남편은 바로 그 다리 아래에서 송사리를 잡고 겨울이면 얼음을 지치며 놀던 신나는 추억뿐인데, 같은 공간을 두고 어쩌면 이리도 다른 기억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러나 아름답게 변한 풍경과 따듯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결 밝아진 그분은 점차 어두운 기억 뒤에 가려진 그리움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저기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네, 우리가 살던 교장 관사가 헐리고 큰길이 났구나.” 추억의 봇물이 터진 듯 나중에는 “실은 박○○라는 아주 예쁜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애를 보려고 주일학교에도 나갔어”라는 고백까지 나왔다.
내친김에 우리는 그분의 아버지가 근무하셨다는 고창중학교까지 찾아갔다. 그리고 교장실에서 마침내 보았다. 역대 교장선생님의 사진 중에 맨 앞에 걸려 있는 초대 김용환 교장선생님. 70대 중반인 자신보다 더 젊은 아버지의 사진을 올려다보며 감격하는 모습에서 비로소 그분의 깊은 상처가 치유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그가 우리에게 말했다.
“정말 고마워. 어두운 기억을 아름다운 색으로 덧칠하게 해줘서.”
그 한마디로 특별한 추억 여행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