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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전쟁과 소년

입력 | 2016-06-09 03:00:00


참 특별한 여행이었다. 우리 부부가 사진평론가 김승곤 선생에게 전북 고창 여행을 제안할 때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4년을 그곳에서 보냈지만 떠난 이후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내 남편의 고향이기도 한 그곳으로 추억여행을 가자고 했다. 그러나 고창에 도착한 날 밤, 그분은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6·25전쟁의 기억을 꺼내놓았다.

“읍내를 흐르는 천(川) 있지? 그 다리 아래서 인민재판이 열리는 걸 보았어. 그리고 효수된 머리를 들고 행진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했지. 집집마다 보초 설 남자를 한 명씩 차출하는 바람에 어린 내가 죽창을 들고 밤에 보초를 서기도 했어. 우리 집에는 누님만 있어서 나갈 사람이 없었거든. 무섭고 끔찍했지. 평생 트라우마가 되었어.”

전쟁이 한 소년의 기억을 그렇게 잿빛으로 만들었다. 그분보다 한참 어린 남편은 바로 그 다리 아래에서 송사리를 잡고 겨울이면 얼음을 지치며 놀던 신나는 추억뿐인데, 같은 공간을 두고 어쩌면 이리도 다른 기억을 가질 수 있을까.

1950년 당시 열한 살 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은 참혹했다. 교장 발령을 받은 아버지를 따라와 살던 고창에서 전쟁의 참상과 맞닥뜨렸던 소년은 두려움과 그리움이 뒤섞인 그곳을 60여 년이 흐르도록 다시 가지 못했다. 그곳에서 오래된 상처와 대면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름답게 변한 풍경과 따듯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결 밝아진 그분은 점차 어두운 기억 뒤에 가려진 그리움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저기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네, 우리가 살던 교장 관사가 헐리고 큰길이 났구나.” 추억의 봇물이 터진 듯 나중에는 “실은 박○○라는 아주 예쁜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애를 보려고 주일학교에도 나갔어”라는 고백까지 나왔다.

내친김에 우리는 그분의 아버지가 근무하셨다는 고창중학교까지 찾아갔다. 그리고 교장실에서 마침내 보았다. 역대 교장선생님의 사진 중에 맨 앞에 걸려 있는 초대 김용환 교장선생님. 70대 중반인 자신보다 더 젊은 아버지의 사진을 올려다보며 감격하는 모습에서 비로소 그분의 깊은 상처가 치유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그가 우리에게 말했다.

“정말 고마워. 어두운 기억을 아름다운 색으로 덧칠하게 해줘서.”

그 한마디로 특별한 추억 여행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