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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출소자, 사회 나아갈 징검다리 필요한데…

입력 | 2016-06-09 03:00:00


주머니에는 7만 원뿐이었다. 딱히 도움을 받은 곳도 없었다. 형제는 많았지만 모두 형편이 어려웠다. 출소한 뒤 한동안 누나 집에 얹혀살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강도 살인으로 15년간 징역을 살다 올 1월 출소한 서울 노원구 수락산 살인사건 피의자 김학봉 씨(61)는 지난달 16일 교도소에 가기 전에 살았던 동네를 찾았다. 수중에 있던 7만 원을 모두 털어 술을 마셨다. 이후 노숙을 하며 물로 배를 채웠다. 배고픔을 참지 못한 그는 돈을 빼앗기 위해 또다시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다.

지난달 29일 발생한 수락산 살인사건을 계기로 출소자의 사회 적응을 돕는 ‘재사회화’ 활성화가 절실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8일 검찰에 송치된 김 씨는 본보 취재 결과 출소 직전인 지난해 12월 재사회화를 지원하는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직원과 사전 상담을 했다. 당시 그는 최대 3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는 ‘긴급원호’가 필요하다고 했다. 공단 직원은 출소 후 공단을 방문하면 도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씨는 공단을 찾지 않았다.

문제는 ‘제2의 김학봉’이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재사회화를 지원하는 유일한 공공기관인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에서는 출소자들에게 직업훈련, 창업·취업 지원, 심리 상담은 물론이고 숙식까지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2014년 전체 출소자 2만2863명 중 5213명(22.8%)만 이곳을 찾았다.

출소자들의 발길이 뜸한 이유는 자신의 전과 사실이 노출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또다시 갇혀 지내는 게 아닐까 하는 부정적 인식 탓이다. 올 3월 보호관찰소의 소개로 공단을 찾아 용접 자격증 시험을 준비 중인 이광수(가명·51·전과 6범) 씨 역시 “대다수 재소자들은 ‘공단에 가면 노동일이나 소개해 준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출소자들에게 재사회화를 의무화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공단에서는 매월 전국 교도소 55곳, 소년원 10곳을 방문해 출소를 앞둔 재소자들에게 지원 프로그램을 알린다. 하지만 직원 1, 2명이 재소자 수십 명을 상대하다 보니 1명당 5∼10분가량 상담하는 데 그치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여건이 충분치 않다 보니 재소자를 설득하고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다”며 아쉬워했다.

숙식 제공 시설도 넉넉하지 않다. 현재 공단에서 동시에 숙식을 제공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650명에 불과하다. 공단 관계자는 “비교적 일자리를 구하기 쉬운 수도권 지부에는 숙식 제공을 원하는 출소자가 몰려 되돌려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체계적인 재사회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강력범들의 재범 이유는 먹고살기 힘들고 의지할 곳이 없어서인 경우가 많다”며 “재범을 막는 방법은 결국 재사회화뿐”이라고 말했다. 장응혁 경찰대 교수는 “재범 동기는 다양하기 때문에 이에 맞춘 섬세한 지원이 필요하다. 성공적인 재사회화 사례를 만들어 널리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동혁 hack@donga.com·김호경·이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