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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K, 亞 최고 대회였던 동아사이클 명성 잇기를”

입력 | 2016-06-09 03:00:00

심판으로 참가한 ‘동아사이클 원년 멤버’ 두 원로




1968년 제1회 동아사이클에 참가했던 정종진 대한자전거연맹 심판위원(왼쪽)과 이암악 법제상벌위원장. 대전=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동아사이클은 모든 선수의 꿈이었다. 출전 자체가 영광이었다.”(이암악 대한자전거연맹 법제상벌위원장)

“온 국민의 축제였다. 우승하면 카퍼레이드를 해 줘 스타가 된 느낌이었다.”(정종진 심판위원·전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

‘44명의 선수가 일제히 스타트, 장장 삼천리길을 달릴 7일간의 로드레이스가 시작됐다.’

1968년 제1회 동아사이클의 첫출발을 동아일보는 이렇게 전했다. 당시 11개 시도에서 한 팀(4명)만 출전할 수 있어 선수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5일 막을 올린 ‘투르 드 코리아(TDK) 2016’ 관계자 가운데는 원년 동아사이클에 출전했던 이들이 있다. 심판 자격으로 참가한 이 위원장과 정 위원을 TDK 현장에서 만났다.

이 위원장은 당시 충남 대표로 나가 단체 1위를 합작한 ‘원년 우승 멤버’다. 1972년 4회 대회 개인종합 정상에 올랐던 정 위원은 선수, 코치, 감독으로 30년 동안 동아사이클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선수로서만 동아사이클에 10차례 이상 출전했던 둘은 아시아선수권대회와 아시아경기에서도 금메달을 따는 등 1970년대 한국 사이클의 간판이었다.

“전국 규모 대회는 동아사이클이 처음이었다. 일본에도 그렇게 큰 대회는 없었다. 동아사이클 덕분에 한국은 도로에서 아시아 최강이 됐다. 일본, 대만 등도 앞다퉈 동아사이클을 벤치마킹했다. 나도 이 대회를 치르면서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이 위원장)

제1회 동아사이클은 서울과 마산을 왕복하며 7일 동안 1202.8km를 달렸다. 1229km를 8일 동안 달리는 올해 TDK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두 명의 원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는 전체 코스의 절반 정도가 비포장도로였다. 주먹만 한 돌들이 깔린 길도 있었고 비가 오면 온통 진흙탕이 됐다. 손이 너무 아파 핸들에 스펀지를 둘둘 감아 탈 정도였지만 레이스를 포기한 적이 없다. 30차례 열린 대회에서 내가 속한 경남이 7차례나 우승한 건 지금 생각해도 뿌듯하다.”(정 위원)

“언젠가 자갈들을 요리조리 피해 달리고 있는데 앞에 서 있던 택시 문이 갑자기 열렸다. 그대로 충돌한 뒤 논두렁에 처박혔다. 그래도 다시 페달을 밟았다. 경기를 마치고 보니 왼쪽 어깨에 금이 갔더라.”(이 위원장)

두 선배의 회고담을 듣고 있던 김성주 본보 해설위원(전 대한사이클연맹 사무국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한번은 펠로통(메인 그룹)을 40분 이상 따돌리며 독주하는데 먹을 게 다 떨어졌다. 추가 보급을 받아야 하는데 음식물을 실은 팀 차량은 다른 3명을 챙기느라 한참 뒤에 오고 있었다. 먹지 못한 채 자갈길을 100km 가까이 달리다 보니 길이 여러 개로 보이더라. 하늘이 노란 상태로 주저앉아 있는데 다른 선수들이 내 옆을 휙휙 지나갔다. 나중에 팀 관계자에게 사이클을 집어 던지며 화풀이를 했다(웃음).”

그는 부산대 재학 시절인 1973년 제6회 대회를 시작으로 8회 연속 동아사이클에 출전했다. 쥐가 많이 나는 체질 탓에 개인종합 우승은 못 했지만 구간 우승은 여러 차례 했다. 두 선배도 “김 국장이 비포장도로는 가장 잘 탔다”고 인정했다.

동아사이클은 1997년을 끝으로 사라졌다. 이 위원장과 정 위원은 “사이클인들이 모두 나서 탄원도 하고 서명 운동도 했지만 살리지 못했다. 큰 충격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2007년 국민체육진흥공단이 TDK를 만들면서 다시 한국을 대표하는 도로대회가 생겼다. 두 원로는 출범 10주년을 맞아 동아일보와 손잡은 TDK가 예전처럼 아시아를 대표하는 대회가 되기를 기원했다.

“동호인들이 크게 늘면서 침체됐던 한국 사이클이 발전할 계기를 맞고 있다. 빙상의 이상화 선수가 서양인들에 비해 불리한 체격조건을 뛰어넘어 올림픽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의 능력도 있지만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이클에서도 하루빨리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나오길 바란다.”(이 위원장)

“인간의 힘으로 가장 빨리, 멀리 가는 게 사이클이다. 극한의 고통을 이겨냈다는 쾌감은 마약과 비교할 만하다. 예전에 동아사이클이 그랬듯이 TDK가 국내 선수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도록 더욱 발전했으면 좋겠다.”(정 위원)

대전=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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