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 낸 문단의 신예 정지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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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돈 씨는 “읽는 것이 곧 쓰는 것이고 쓰는 게 읽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집 뒤에 빼곡히 정리된 참고문헌 목록이 궁금했는데, 그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그가 첫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문학과지성사)를 냈다. 등단 3년 만이다. 8일 만난 작가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붕 떠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주목받는 신인의 첫 책인 만큼 문단 안팎에서 쏟아지는 관심이 적잖다. 그는 “운”이라며 겸손해했다. “등단작을 발표한 지 두어 달 만에 평론이 나왔다. 내 작품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는데 오히려 관심을 끌게 됐다. 지방 문예지에 발표해 눈에 띄지 않았을 작품이 우연히 젊은작가상 후보에 올랐다. 주변에선 ‘어부지돈’이라고 하더라.”(웃음)
그러나 운이라기엔 그의 소설의 새로움이 두드러진다. 가령 단편 ‘눈먼 부엉이’에서는 노르웨이인 에리크 호이어스가 ‘나’를 찾아와선 ‘나’의 친구가 갖고 있던 ‘눈먼 부엉이’라는 책을 달라고 한다. ‘눈먼 부엉이’는 이란 작가 사데크 헤다야트의 작품이다. 작가는 호이어스가 왜 헤다야트의 작품을 읽게 됐는지를 설명하다가 헤다야트의 삶을 정리하는 것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허구의 인물과 실존 인물이 뒤엉키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단편 ‘뉴욕에서 온 사나이’에선 쿠바 작가 레이날도 아레나스가 화자 ‘나’의 동성 애인으로 등장한다.
그는 “로베르토 볼라뇨, W G 제발트,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좋아하는 작가로 꼽았다. 볼라뇨나 제발트는 세계문학 가운데서도 한국 독자들에게 친숙한 작가들은 아니다. 외국 문학 이론서를 읽다가 ‘언급은 적지만 이름이 올라 있는’ 작가들의 책을 찾아 읽게 됐고, 의외로 보석 같은 소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는 게 그의 말이다. 낯선 작품에의 탐독이 ‘정지돈 소설’의 자양분이 됐음은 물론이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30년 지기의 얘기를 들려줬다. “어릴 적 내가 읽었던 탐정소설 얘기를 그 친구에게 들려주곤 했다. 그대로 들려줬겠나. 내 마음대로 바꿔 가면서. 그 친구가 그러더라. 지돈이는 지금도 그때와 똑같다고.” 자신이 읽었던 소설과 역사 철학 인문서 등을 뒤섞어 새로운 얘기를 들려주는 것, 정지돈 소설의 개성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