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8일 수요일 맑음. 숱한 고지.#211 Eduardo Bort ‘Cuadros de Tristeza’(1974년)
스페인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가 에두아르도 보르트의 1집 앨범 표지.
적은 금액이나마 버스커에게 돈을 줘 본 건 처음이었다. 시답잖은 비평이나 해 봤지. 문득 돌아보니 난 클린트 이스트우드조차 난감해하며 배역을 고사할 정도의 무정한 캐릭터였다, 가끔.
알고 보니 데보드 신전은 내 처지와 비슷했다. 원래대로라면 그는 이집트 나일 강변에 서있어야 했다. 아스완 댐 건설로 신전이 침수 위기에 처하자 이집트 정부는 우방인 스페인에 신전을 통째 기증하기로 한다. 데보드는 그래서 이집트 밖에 있는 유일한 이집트 신전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고대의 돌무더기와 분수, 먼 산 위에서 흘러온 보랏빛 햇살을 받은 스페인 왕궁의 조합은 요 며칠 미술관에서 본 그림들처럼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했다.
마침 내 이어폰에서는 스페인의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가 에두아르도 보르트의 괴팍하면서 서정적인 음악이 흘렀다. 그날 낮 숙소 근처 중고 음반 가게에 들렀다 주인장한테 추천받아 덜컥 구입한 앨범.
음반 표지의 보르트는 이름처럼 그저 보통 사람 같다.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가부좌 튼 채 기타 들고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는 그. 허름한 연갈색 면바지에 기타는 통기타다. 무엄하다. 적어도 우주쯤 배경으로 깔 적엔 우주적 의상쯤은 갖춰 줘야 하는걸. 안 그래서 그는 더 도인 같다.
‘그녀의 얼굴은 죽은 잔디 같지/절대로 미소 짓지 않아/그녀의 눈은 얼어붙은 잔과 같지/때로 울기도 하고… 슬픈 마리아, 당신은…’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