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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 다시 찾는 5060… 지식충전으로 경제활동 돌파구

입력 | 2016-06-09 03:00:00

[탈출! 인구절벽 2부]<3>평생학습으로 개인-사회 경제 선순환구조를




《 지난달 11일 오후 2시 서울 동작구 중앙대 102관 812호.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강좌가 시작되기 30분 전부터 수강생이 하나둘 강의실로 들어왔다. 수강생은 20대부터 50, 6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젊은 청년 창업가, 중년의 부부, 직장에서 정년퇴직 시기에 이른 듯한 나이 지긋한 남성도 있었다. 이 강좌는 외식산업에 종사하거나 종사 예정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14주간 예정된 것. 수강생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하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요즘 그 동네 상가 매물 동향은 어때요?”, “가게 옮길 예정이라더니 잘됐어?”, “온라인 판매 홈페이지 만들려 하는데 아는 제작업체 좀 소개해 줘요.” 등의 대화가 오갔다. 20대 초반의 여느 대학생들 못지않게 강의실은 의욕과 활기로 가득 찼고, 각자 미래와 비전을 준비하는 눈빛들은 밝고 또렷했다. 》

○ 인구절벽의 대안, 평생교육

지난달 11일 서울 중앙대에서 진행된 한 평생교육 강좌. 이날 참석한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수강생들은 기업가로서 해외시장 진출, 창업 등 다양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출산율 저하와 경제인력 감소 등 ‘인구절벽’이라는 용어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의 문제는 평생교육 분야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신생아 출산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지 않는 이상 기존의 인구구조에서 새로운 경제 활력을 찾아내고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국가가 유지될 수 있다. 평생교육은 인간의 전 생애에 걸친 꾸준한 재교육을 통해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개개인의 삶이 윤택하게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분야다. 이미 우리보다 먼저 출산율 저하, 노동력 감소 문제를 겪은 유럽 선진국은 평생교육 활성화를 통해 난관을 헤쳐 나가고 있다.

지난달 중앙대에서 만난 평생교육 강좌 수강생 30여 명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새로운 도전을 위해 강의를 듣고 있었다. 백화점 입점 매장에서 의류를 판매하다 부부가 함께 새 의류 브랜드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하고 강의실을 찾은 김남수 씨는 “오프라인 노하우는 많지만 온라인 쪽은 잘 몰라 이번 강좌를 통해 온라인 마케팅 노하우를 배울 것”이라고 말했다. 1995년까지만 해도 전업주부였다가 1996년에 우연히 평생교육 수업을 듣고 석사, 박사학위를 따 교수로 변신한 권창심 씨는 “배우고 싶다는 의지는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며 “대학을 졸업한 지 오래된 성인들이 다시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이를 활용해 경제활동을 해 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 성인 10명 중 6명은 평생교육과 단절

교육부가 지난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만 25∼64세)의 평생학습 참여율은 40.6%다. 10명 중 6명은 평생학습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성인 인구가 약 2800만 명임을 감안하면 1700만 명 정도는 다양한 이유로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배움을 멀리하거나, 기회를 갖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었다. 교육부가 평생학습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를 조사해 보니 “시간이 없어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동기와 자신감이 없어서”, “교육비용이 너무 비싸서”, “가까운 거리에 교육기관이 없어서” 등의 답변이 뒤를 이었다. “만약 평생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어떤 강좌를 듣고 싶은가”라는 물음에는 스포츠, 직무능력 향상교육, 가정생활 관련 강좌, 자격증 인증, 외국어, 음악 순으로 응답이 많았다.

이처럼 많은 성인들은 평생학습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또 활용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 한 중견기업의 과장급으로 근무하고 있는 직장인 황모 씨(42)는 자기 계발을 위해 지난해 대학원에 등록했다가 한 학기 만에 포기했다. 해외무역과 물류유통을 다루는 황 씨는 업무에 연관된 정부의 정책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 대학원에 등록했지만 잦은 야근과 주말근무 때문에 수업을 여러 번 빠져야 했다. 토요일에도 수업을 듣고 있으면 카카오톡으로 직장 상사가 끊임없이 업무 지시를 내리고 전화를 하고, 조금이라도 답이 늦으면 역정을 내는 통에 스트레스가 컸다. 황 씨는 “그래도 내가 맡은 일은 차질 없이 다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며 “교수가 수업을 안 들어와도 좋으니 논문만이라도 내라고 했는데 그마저도 시간이 없어 포기했다”고 아쉬워했다. 황 씨는 “지금까지는 그나마 대학 때 배운 것들, 입사해서 현장에서 배운 것들로 근근이 자리를 유지했는데 앞으로는 변화를 따라가기 어려워 바보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


선진국은 평생교육에 대한 확고한 철학으로 시스템을 안착시켰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노동조합 조직률(95% 이상)을 보이는 스웨덴은 노조가 평생교육협회, 노동대학 등과 연계해 노동자들의 재교육과 평생교육을 주도하고 있다. 스웨덴은 이미 1974년부터 직장인의 평생학습을 위해 휴가권을 보장하는 학습휴가권 제도를 시행 중이다. 직장에 근무한 지 일정 기간 이상이 지난 근로자는 법령에 근거해 학습휴가를 갈 수 있다.

덴마크도 국민 2명 중 1명꼴로 평생학습에 참여하고 있으며, 대다수 기업에서 노조와 고용주가 매년 단체협상에서 아예 평생교육에 관한 내용을 명문화하고 있다. 핀란드는 1970년대 평생교육을 국가의 중요한 교육정책으로 통합시킨 뒤 꾸준히 성인학습 분야를 지원해오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한국도 인구 감소에 대비해 선진국처럼 평생교육 분야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위적으로 출산율을 높일 수 없다면, 기존의 경제 인력에 새로운 지식을 심어 꾸준히 경제활동을 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한국에선 대부분 초중고교와 대학 4년을 마치면 일생의 배움이 거기서 끝난다”며 “이후에는 직장에서 그 지식들이 낡고 닳을 때까지 소진되다가 경쟁에서 밀리고 승진, 창업도 어려워 낙오자가 되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한 교수는 “선진국은 기업이 나서 직원의 평생교육을 지원하는데 한국 기업은 기존 인력의 지식이 다하면 버리고 새로운 인력을 채용해 채우려고만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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