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최근 홍 지사 거취와 관련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진원지는 ‘명분’ ‘결단’ ‘행동’ 같은 표현이 잦아진 그의 입이다. 기자들에게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을 향해선 “내년 1월부터 대권후보 경선을 치르자”고 제안했다. 그의 향후 행보를 예측하는 보도에도 반론은 없었다. 다만 “‘대선 출마를 이유로’ 도정을 등한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련의 흐름을 종합하면 ‘결심이 섰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는 어떤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을까. 우선 성완종 사건 1심 재판 무죄, 주민소환 투표 무산, 영남권 신공항 밀양 확정 등 주변 여건이 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경우다. 성완종 리스트가 불거진 이후 1년 2개월의 속박에서 벗어나 연내 또는 내년 초 물러나는 각본이다. 그가 바라는 최상의 결과다.
10일 뒤면 홍 지사가 보궐선거를 통해 도정을 맡은 지 3년 6개월이 된다. 임기는 2년 남았다. 중도사퇴를 한다면 보궐선거로 들어와서 다시 보궐선거를 만드는 셈이다. 지사직을 노리는 예비주자들의 연쇄 중도하차도 우려된다. 민의의 왜곡, 정책 일관성 상실, 엄청난 예산과 행정력 낭비…. 다른 선거 출마를 위한 사퇴는 말 그대로 악순환을 부른다.
1995년 민선 1기 이후 3명의 경남지사는 소위 ‘잠룡(潛龍)’으로 불렸다. 홍 지사까지 가세하면 100%다. 2003년 중도사퇴 뒤 당적을 바꾼 김혁규, 2010년 총리 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김태호, 2012년 대권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2년 만에 자리를 던진 김두관 전 지사. 이들이 ‘서울 바라기’를 하며 도정을 소홀히 한 후유증은 컸다. 대권욕의 볼모가 된 도민들 심사도 틀어졌다.
홍 지사는 “그들과 다르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경남을 등지고 경기 김포갑으로 둥지를 옮겨 4년 만에 겨우 일어선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직을 걸었다가 지금껏 낭인 신세인 새누리당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당시엔 ‘승부수’라고 여겼다. 그러나 패착은 긴 그림자를 남겼다. 국민의 눈이 여전히 매섭고 민심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까닭이다. 판결, 주민소환, 병마가 아니라면 임기를 채우는 것이 원칙이다. 유권자의 명령이기도 하다.
홍 지사는 얼마 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불참과 관련해 “의로운 죽음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가 서둘러 지사직을 그만둔다면 역시 ‘의로운 사퇴’가 아니다. 공익적 결단이라기보다 도피성 또는 이기(利己)로 기록될 게 뻔하다. 절대 진중해야 할 이유다.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ma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