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대책 이후]올들어 세번째 압수수색 수모… 정치에 휘둘려 존립기반 휘청 역대 수장들 권력형 비리 연루… 정권 눈치보며 기업부실 방조
정책금융기관의 ‘맏형’인 KDB산업은행이 위기를 맞고 있다. 각종 금융비리와 정치금융 논란에 계속 휘말리면서 한국 경제 성장의 든든한 자금줄이었던 국책은행으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은은 올해에만 3번이나 검찰에 압수수색을 당했다. 올 4월에는 제조업체에서 뇌물을 받고 대출을 도와준 혐의로 이모 팀장의 사무실을 검찰이 급습했다. 지난달에는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 수사와 관련해 류희경 수석부행장 사무실이 압수수색 당했다.
이번 대우조선해양 수사에선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는 구조조정실과 담당 부행장 사무실이 모조리 수색 대상이 됐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에도 산은이 검찰 수사를 받은 적은 많았지만 이번에는 특정한 개인 비리가 아닌 ‘구조조정 업무’ 자체를 겨냥하고 있어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부실 경영 또는 경영상 판단 미스의 책임을 지고 불명예 퇴진한 사례도 많다. 민유성 전 산은 회장은 파산 직전의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하려 했다가 정치권의 질타를 받고 2011년 남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났다. 강만수 전 회장도 고금리 예금을 무리하게 많이 팔았다는 이유로 감사원의 감사를 받다가 결국 자진 사퇴했다.
홍기택 전 회장도 이번 수사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홍 전 회장이 “산은은 구조조정의 들러리였다”고 주장한 언론 인터뷰 역시 자신을 향한 수사 가능성이 높아지자 책임을 피해 가려는 ‘물타기’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산은이 이렇게 수난을 겪는 이유가 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금융회사 본연의 업무보다는 정부의 국정철학에 따른 특수한 역할을 수행하다 보니 항상 탈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산은이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경제가 아닌 정치 논리로 일 처리를 해왔던 게 화근”이라고 말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장윤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