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논설위원
내친김에 KT&G 고위 관계자들로부터 들은 정부의 ‘낙하산’ 인사 시도는 충격 그 자체였다. 청와대 최고 경제 실세와 같은 직장을 다녔고 같은 (외국)대학을 졸업한 인사를 사장에 선임하라고 온갖 압력이 들어왔지만 성사가 안 되자 검찰 수사가 들어왔다고 한다. 사외이사 2명을 막무가내로 꽂으려다 이사회의 반발에 부닥쳤으나 결국 1명은 성공시켰다는 이야기를 생생한 증언으로 들으면서 ‘해도 너무들 하는구나’ 싶었다. 회사 관계자는 “민영화한 기업이 이 정도라면 공기업 낙하산은 어떨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했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은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은 낙하산 인사 탓이 컸다”고 했다. 자신도 친박 낙하산 인사로 이 정부 최고 수혜자 중 한 명이면서도 청와대에 칼을 꽂는 모습이 역(逆)하지만 사정을 잘 아는 금융권 사람들은 “그의 말이 맞다”고 한다. 실제로 사외이사 7명 중 5명을 ‘정피아’로 보낸 이 정부는 대우조선해양 부실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을 때도 조선(造船) 관련 이력이 전무한 검찰 출신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꽂으려다 실패했다.
이 정부의 낙하산은 가히 전방위다. 대통령 주치의 출신으로 최근 서울대병원장이 된 서창석 씨를 비롯해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모두 한 병원(분당서울대병원)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보건의료 3대 기관장을 싹쓸이한 배경을 두고 “문고리 3인방과 가까운 모 의대 교수가 중간에 있다”는 풍문이 의료계에 파다하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멀쩡했던 병원에 웬 낙하산 파동인지 모르겠다”며 “평생 전문가적 자존심 하나로 살아왔는데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윤창중 씨가 마치 음해세력의 공모에 따른 희생자인 양 강변하며 다시 등장한 모습은 현 정부 막장인사의 끝판을 보여 주는 듯하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는 새 정부에서는 없어져야 합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인수위원회 토론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한 말이다. 틈만 나면 “원칙과 신뢰”를 말했던 대통령의 모습이 그리우면서도 슬프다. 그리고 미래가 두렵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