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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의 프리킥]대통령 사진사, 주치의, 그리고 다시 윤창중

입력 | 2016-06-10 03:00:00


허문명 논설위원

2일자 본보 사회면 KT&G(옛 담배인삼공사) 납품비리 수사 기사에서 대통령 사진사 박모 씨가 눈에 확 들어왔다. 2012년 대선 캠프에서 박근혜 후보 전담 사진사였던 그는 그해 12월 교통사고로 숨진 대통령 측근 이춘상 보좌관과 같은 차를 타고 가다 중상을 입었다. 회복 후 정치와는 무관하게 산다더니 광고를 계속하게 해주겠다면서 대행사로부터 3억6000만 원을 받았다. KT&G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문고리 권력과의 친분을 앞세우며 돈을 받았다”고 했다. 정권 말기 지저분한 부패, 이권 나눠 먹기 같은 일이 설마 이 정부엔 없겠지 했는데 기대가 허망하게 무너졌다. 사진사까지 챙기고 있다니….

내친김에 KT&G 고위 관계자들로부터 들은 정부의 ‘낙하산’ 인사 시도는 충격 그 자체였다. 청와대 최고 경제 실세와 같은 직장을 다녔고 같은 (외국)대학을 졸업한 인사를 사장에 선임하라고 온갖 압력이 들어왔지만 성사가 안 되자 검찰 수사가 들어왔다고 한다. 사외이사 2명을 막무가내로 꽂으려다 이사회의 반발에 부닥쳤으나 결국 1명은 성공시켰다는 이야기를 생생한 증언으로 들으면서 ‘해도 너무들 하는구나’ 싶었다. 회사 관계자는 “민영화한 기업이 이 정도라면 공기업 낙하산은 어떨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했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은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은 낙하산 인사 탓이 컸다”고 했다. 자신도 친박 낙하산 인사로 이 정부 최고 수혜자 중 한 명이면서도 청와대에 칼을 꽂는 모습이 역(逆)하지만 사정을 잘 아는 금융권 사람들은 “그의 말이 맞다”고 한다. 실제로 사외이사 7명 중 5명을 ‘정피아’로 보낸 이 정부는 대우조선해양 부실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을 때도 조선(造船) 관련 이력이 전무한 검찰 출신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꽂으려다 실패했다.

한 외국계 금융회사 한국대표 말이다. “이 정부의 금융권 낙하산 인사는 역대 이런 경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노골적이고 무자비하다. 요즘엔 정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서인지 사생결단으로 덤비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깜’이 안 되는 사람들을 밀어붙이나, 대통령은 이런 현장을 알고나 있나…. 참 한심스러울 때가 많다.” 그는 “‘낙하산’의 폐해는 기업을 자신들의 ‘꿀단지’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해당 회사는 물론이고 산업을 멍들게 하고, 나아가 정권에 대한 국민 신뢰를 무너뜨린다. 그 정점에 친박과 청와대가 있다는 걸 모르는 금융인들은 없다”며 분개했다.

이 정부의 낙하산은 가히 전방위다. 대통령 주치의 출신으로 최근 서울대병원장이 된 서창석 씨를 비롯해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모두 한 병원(분당서울대병원)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보건의료 3대 기관장을 싹쓸이한 배경을 두고 “문고리 3인방과 가까운 모 의대 교수가 중간에 있다”는 풍문이 의료계에 파다하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멀쩡했던 병원에 웬 낙하산 파동인지 모르겠다”며 “평생 전문가적 자존심 하나로 살아왔는데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윤창중 씨가 마치 음해세력의 공모에 따른 희생자인 양 강변하며 다시 등장한 모습은 현 정부 막장인사의 끝판을 보여 주는 듯하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는 새 정부에서는 없어져야 합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인수위원회 토론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한 말이다. 틈만 나면 “원칙과 신뢰”를 말했던 대통령의 모습이 그리우면서도 슬프다. 그리고 미래가 두렵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