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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보다 스펙터클하게 올림픽 장비도 뛴다

입력 | 2016-06-11 03:00:00

[보다 스펙터클하게: 올림픽 장비 어디까지 왔나]




전통적인 삼각형 구조를 지니지 않았기 때문에 올림픽 출전이 금지된 자전거. 사진 출처 국제사이클연맹(UCI) 홈페이지

“몇 초 만에 승부가 결정되는 마당에 0.1초라도 빨리 기어를 바꿀 수 있다면 대단한 거죠.”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있는 조호성 사이클 국가대표 감독은 자전거 기어를 바꾸는 ‘찰나의 순간’마저도 무한한 변수를 지닌 승부처라고 여긴다.

250km 이상의 거리를 달리는 사이클 개인도로 출전이 유력한 김옥철(서울시청)은 무선 장치를 이용해 기어를 바꿀 수 있는 자전거를 타고 있다. 그가 사용하는 미국 스램사의 변속장치는 레버와 기어가 암호화된 무선 신호를 주고받아 자동으로 기어를 바꾼다. 예전의 자전거는 케이블로 연결된 변속장치를 사용했다. 기어를 바꾸는 데 힘이 들고 케이블이 끊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버튼만 누르면 작동하는 이 변속기는 그럴 염려 없이 더 빨리 기어를 바꿀 수 있다.

선수들은 달리면서 자신의 몸에 지닌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자신의 속도 및 소모된 열량, 맥박 수 등을 점검하는 한편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해 남은 거리와 코스를 측정한다.

자전거가 최근의 정보기술(IT)에 힘입어 ‘스마트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이원홍 bluesky@donga.com·이승건 기자

▼ 방탄복만큼 강한 펜싱복… 철강 100배 강도 ‘울트라 활’ ▼


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영국의 크리스 보드먼이 ‘로터스 슈퍼바이크’를 타고 질주하고 있다. ‘윈드 치타’로도 불린 이 자전거는 미국의 첨단 자전거 개발 계획에 영향을 주었다. ② 국제사이클연맹(UCI)이 규정하고 있는 자전거의 기본 형태. 뼈대는 반드시 삼각형 구조를 이뤄야 한다. ③ 2012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라세 한센의 역주. 보드먼의 자전거에는 없었던 뼈대의 삼각형 구조가 눈에 띈다. 사진 출처 국제올림픽위원회(IOC)·국제사이클연맹(UCI) 홈페이지

선수들은 각자 자신의 체격 조건에 맞추어 부품을 따로 구입해 재조립하며 장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김옥철의 경우 자전거 프레임(뼈대)은 독일의 펠트, 타이어는 미국의 지프, 안장은 이탈리아의 산마르코, 브레이크와 체인 및 변속기 등 구동장치는 미국 스램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조 감독은 “자전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프레임이다. 최근에는 카본 소재가 대세이지만 같은 카본 소재라도 제조 공법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카본 소재를 몇 겹이나 입혔는지, 얼마나 압축이 잘됐는지 등에 따라 다르다. 좋은 프레임으로 만든 자전거는 시속 50km 이상의 고속 주행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벤츠와 다른 자동차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초창기 프레임의 무게는 1.5kg까지 나갔지만 최근에는 900g까지 감소했다.

타이어의 무게는 200∼250g 정도다. 길이 다소 평탄하면 가벼운 타이어를 쓰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좀 더 무거운 타이어를 쓴다. 안장은 주로 딱딱한 재질을 사용하는데 선수들의 체형과 골반 사이즈에 맞게 골라 쓴다. 안장이 푹신하면 편하기는 하지만 페달을 밟을 때 힘의 손실이 많다. 무게는 250g 안팎이 주류였지만 최근엔 135g짜리도 나왔다. 이렇게 여러 부품을 재조립했을 때 드는 비용은 보통 1000만∼2000만 원이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일반 자전거의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15만∼70만 원 선이다. 일반 자전거의 무게는 17kg 안팎이다. 산악자전거(MTB)는 산에서 들고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좀 더 가볍다. 14kg 정도다. 촌각을 다투는 경주용 자전거는 이보다 훨씬 가볍다. 6.8∼10kg이다. 선수들은 일반 자전거의 넓적한 페달을 사용하지 않는다. 사이클화 바닥에 페달을 끼워 고정시킨다. 넘어질 때 발이 빠지지 않아 일반인이 사용하기에는 위험하다. 선수들은 또 일반인보다 훨씬 큰 크랭크를 사용한다.

자전거 개발의 역사는 공기 및 무게와의 싸움이기도 했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개발된 대표적인 자전거로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영국의 크리스 보드먼이 타고 나왔던 ‘로터스 슈퍼바이크’가 꼽힌다. 그는 이 자전거를 타고 영국에 72년 만의 올림픽 사이클 금메달을 안겨주었다. 보드먼이 타고 나온 자전거는 기존의 자전거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뒤에는 바퀴살이 없는 원반형 바퀴를 달았다. 앞바퀴에는 칼날처럼 얇고 넓적한 바퀴살 3개가 달려 있었다. ‘윈드 치타’로도 불린 이 자전거는 포뮬러원(F1) 경주용 자동차 생산으로도 유명한 자동차 제조업체 로터스에서 제작했다. 공기와의 마찰을 줄여주는 원반형 바퀴는 이전부터 유행했다. 하지만 옆에서 바람이 불면 자전거를 제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보드먼의 자전거는 이를 개량했다. 뒷바퀴에만 원반형 바퀴를 사용하고 앞바퀴에는 바퀴살이 달린 바퀴를 달았다. 그 대신 바퀴살에 대한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바퀴살을 얇게 만들고 개수를 줄인 것이다. 또 기존 자전거의 뼈대는 삼각형 구조를 이루고 있었으나 이 자전거는 공기역학과 선수의 움직임을 고려해 삼각형 구조를 버렸다. 주 소재는 탄소섬유였다.

이 자전거에 가장 큰 자극을 받은 나라는 미국이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사이클에서 4개의 금메달을 땄던 미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사이클에서 한 개의 금메달도 따지 못하는 침체기를 겪고 있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유치한 미국은 자국에서의 승리를 위해 ‘프로젝트 96’이라는 슈퍼바이크 개발 계획을 추진했고 100만 달러(약 11억 원)의 연구비를 들여 ‘슈퍼바이크Ⅱ’를 만들었다. 미국 선수들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한 대에 3만 달러(약 3500만 원)∼4만5000달러(약 5300만 원)짜리 자전거를 타고 출전했다. 우주항공 기술자까지 동원해 개발한 이 슈퍼바이크Ⅱ에는 방탄조끼로 사용되는 가볍고 튼튼한 케블라 섬유를 사용했다. 체인도 종이처럼 얇게 만들었다.

그러나 미국은 올림픽 금메달 획득에 또다시 실패했다.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에 그쳤다. 미국 여자 사이클 스타 레베카 트위그는 “코치들이 개개인의 의견과 특징을 무시하고 일괄적으로 슈퍼바이크Ⅱ를 타라고 강요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선수들은 이 자전거가 빠르기는 했지만 튼튼하지 않고 다루기 어렵다고 평했다.

미국은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지만 이때부터 첨단 자전거 개발 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본격화됐다. 미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첨단 자전거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일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초고가의 최첨단 자전거를 소유한 나라와 이를 갖지 못한 나라의 불균형이 거론됐다. 올림픽이 선수의 능력을 겨루는 무대가 아니라 장비의 성능을 겨루는 무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국제사이클연맹(UCI)은 1996년 ‘루가노 헌장’을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이 헌장은 ‘사이클 경기가 선수의 육체적 능력이 아니라 선수와 기계의 조화에 더 의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비밀리에 개발된 급진적인 형태의 자전거가 등장해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고 자전거 개발비용도 천문학적으로 상승하는 점에 대한 우려를 담았다.

UCI는 이후 자전거의 기본 프레임을 전통적인 삼각형 구조로 제한하고, 무게를 6.8kg 이하로 줄일 수 없도록 규정했다. 급격한 형태 변화를 막아 개발 경쟁을 억제하고 지나치게 가벼운 자전거를 만들어 안전을 위협받는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부터 적용돼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UCI는 올해 1월 경기용 자전거에 대한 각종 규정을 보완했다. 한편에서는 최근의 발달된 자전거 제조기술을 반영하기 위해 UCI가 그동안 경기용 자전거의 개량 범위를 제한해 온 일부 핵심 규정을 없앨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UCI는 이러한 규정을 없애지 않고 오히려 강화했다. 김성주 전 대한자전거연맹 사무국장은 “루가노 헌장의 기본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사이클 경기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림픽에서 장비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은 수영에서도 있었다. 2000년대 초부터 맹위를 떨친 전신 수영복이 발단이었다. 전신 수영복은 1990년대 말 개발됐다. 상어의 피부에 나 있는 작은 돌기들이 물과의 마찰을 줄이는 데서 착안해 수영복 표면에 작은 돌기와 홈을 만들었다. 선수들의 근육을 압착해 피로물질인 젖산의 축적을 막아주기도 했다.

전신 수영복의 효과는 대단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수영 금메달 33개 가운데 25개를 전신 수영복을 입은 선수들이 가져갔다. 그러나 이로 인한 기록 단축 효과가 너무 큰 것이 문제였다. 사이클의 경우와 같은 고민을 했던 국제수영연맹(FINA)은 2010년 전신 수영복 착용을 금지했다.

현재 FINA는 남자의 경우 수영복이 배꼽 위나 무릎 아래를 덮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자 수영복은 어깨부터 무릎까지만 덮을 수 있다. 수영복 표면은 평평해야 하고 수영복 두께의 최대 얇은 부분이 최대 두꺼운 부분의 50% 이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또 수영복은 0.5뉴턴(N) 이상의 부력을 지닐 수 없게 하고 있다. FINA는 매년 대회에서 입을 수 있도록 허가한 수영복 리스트를 발표하고 있다. 수영 유망주 안세현 등 국가대표 수영선수들은 올해 국내 수영복 업체 동인스포츠 아레나가 제작한 아쿠아포스 라이트닝을 지원받는다. 이 수영복에는 폴리우레탄이 기존의 2배인 63% 정도 함유돼 있다. 이 수영복은 허리와 허벅지 부분의 신축성을 강화해 킥할 때 다리를 빠르게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준다.

사이클과 수영 등에서의 논란이 있었지만 많은 종목에서 올림픽 장비의 진화는 장비 자체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기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 더욱 돋보이도록 도왔다.

양궁에서는 경기에서 선수의 의도가 정확하게 반영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됐다. 주된 노력은 화살의 속도를 높이고 슈팅 순간의 충격과 진동이 화살에 나쁜 영향을 주는 활의 ‘불량운동’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핸들(손잡이 부분)과 날개가 정확한 정렬을 이루고 있어야 좋은 활이다. 날개가 틀어져 있을 경우에 활을 당기면 슈팅할 때 불량운동의 원인이 된다. 양궁 국가대표 선수 및 감독 출신인 박경래 대표가 세운 한국의 윈엔윈은 세계 최초로 활에 최적화된 나노카본 소재를 개발하여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윈엔윈 측은 “철강보다 100배 뛰어난 강도를 지닌 소재로 튼튼하고 비틀림이 적은 날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활의 날개와 핸들 등을 분리 구입해 각자 자신의 특성에 맞게 조립할 수 있다.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은 대부분 국산 활 제조업체 윈엔윈이 만든 날개를 사용한다. 핸들은 미국의 호이트 제품을 쓰는 경우도 있다. 선수들이 어떤 제품을 조립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활에 드는 비용은 보통 300만 원 정도이다.

① 장대높이뛰기 경기 모습. 초기에는 대나무를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탄성이 더욱 뛰어난 섬유유리나 탄소 소재로 만든 장대를 사용하고 있다. ② 김옥철과 그의 자전거. 다양한 부품을 재조립했다. ③ 펜싱의 칼은 제트 전투기에 사용하는 마레이징강으로 만든다. 동아일보DB

장비 발달 덕에 기록이 크게 향상된 대표적인 종목으로는 장대높이뛰기가 꼽힌다. 초창기 선수들은 대나무 장대를 사용했다. 대나무 장대는 이후 섬유유리로 만든 장대로 대체됐고 탄소화합물로 구성된 장대도 등장했다. 새로운 장대의 뛰어난 탄력성 덕분에 장대높이뛰기 최고 기록은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장대높이뛰기에서 섬유유리로 만든 장대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건 1960년대부터다. 현재 장대높이뛰기 최고 기록은 2014년 프랑스의 르노 라빌레니가 세운 6m16이다. 1957년 당시의 세계기록이 4m78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난다.

장비의 발달은 올림픽을 더욱 안전한 무대로 만드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펜싱에서는 경기 도중 선수가 부러진 칼에 찔려 사망한 적도 있다. 펜싱계는 이에 따라 장비의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최근에는 경기 중 칼이 부러져 다치는 사고를 줄이기 위해 탄소강철보다 훨씬 강한 마레이징 강철로 칼을 만들고 있다. 마레이징 강철은 제트 전투기에 사용하는 합금강철이다. 선수 보호용 재킷은 방탄조끼 재료인 케블라 섬유를 사용해 만든다. 보통 선수들은 3∼5자루의 칼을 가지고 다니지만 실제 경기에서는 한 자루만 사용할 수 있다. 칼의 가격은 사브르의 경우 4만∼5만 원, 플뢰레 12만∼13만 원, 에페 13만∼15만 원이다.

이렇듯 현재 올림픽에서는 장비가 인간 본연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규제하려는 움직임과 장비의 발달을 더욱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섞여 있다.

스포츠철학을 강의하고 있는 김홍식 한국체육대 교수는 “과학의 발달은 계속해서 올림픽에서 사용될 장비의 수준에 대한 논란을 제기할 뿐만 아니라 경기방식 자체를 바꾸거나 새로운 종목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렇다면 순수한 인간의 육체를 단련하고자 하는 올림픽의 기본 정신은 사라지고 말 것인가. 김 교수는 “한편으로는 인간의 능력을 겨루고자 하는 올림픽 정신을 살리고 한편으로는 과학의 성과를 접목하기 위해 미래에는 올림픽이 분리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고 말했다.

순수한 인간끼리 겨루는 ‘자연인의 올림픽’, 웨어러블 로봇이나 첨단 기구를 착용한 ‘개조인간의 올림픽’, 그리고 순수한 ‘로봇들의 올림픽’이 등장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이 어떤 형태가 되어가든 그 속에는 일관된 인간의 의지가 들어 있다. 그것은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도약과 발전을 향한 의지이다.

이종석 wing@donga.com·유재영·황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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