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탐사기획/프리미엄 리포트/다문화 인구 200만 시대] 한국생활 17년 콩고인 버지니아씨
버지니아 씨(43·여·사진)는 자신을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17년 전 고국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내전을 피해 도망 와 한국에 도착했을 때 20대였다. 청춘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보낸 그녀에게 이곳은 고향이고 안식처다. 경기 안산시 다문화강사로 일하는 버지니아 씨는 한국어가 유창하고 성격이 밝아 주민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콩고의 문화를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면 콩고와 한국 모두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가 17년 동안 한국에서 겪은 경험은 한국의 다문화사회 진입과 혼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화난 표정과 욕설’이 한국의 첫인상이었다. 거리를 나서면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물건을 사기 위해 가게에 들어서면 내쫓기기 일쑤였다. 당장 꺼지라며 빗자루로 위협하는 곳도 있었다. 밖을 나갈 수 없었다. 방 안에 틀어박혀 가족을 생각하며 눈물만 흘렸다.
우울증을 극복하고 한국에 적응하기 위해 안산시의 ‘다문화강사’에 지원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첫 강의를 나간 어린이집에서 덩치 큰 흑인 여성을 본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만약 백인이었어도 그랬을까’란 생각이 그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한국인들은 중간이 없는 것 같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게 분명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이젠 그도 배척의 대상이 아닌 좋은 이웃이 됐다. 다문화수업에서 가르친 아이들이 자라서도 자신을 기억해줄 때면 가장 행복하다. 콩고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중학생 아들은 피부색만 다를 뿐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다. 그녀는 “아들이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차별이 대물림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고 말했다. 이제 버지니아 씨는 한국 귀화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 매력을 느껴 한국 정착을 결심한 외국인들도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율리아 씨(27·여)는 “한국 여행을 하면서 한국인들의 친절함에 반해 언젠가는 한국에 들어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대학에서도 한국어를 전공했다”고 말했다. 귀화한 중국동포 남명자 씨(58·여)는 “한국에서는 점원이 물건을 사지 않아도 인사를 하는데 중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친절함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