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전도사 나선 광고인… 박웅현 TBWA코리아 CCO
《 박웅현 TBWA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대표(CCO·55)는 ‘스타 광고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카피라이터 출신인 그는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사람을 향합니다’ ‘진심이 짓는다’ 같은 카피로 유명한 히트 광고들을 만들었다.그는 파워라이터이자 인문학 전도사이기도 하다. 그의 인문서 강독회 강연을 엮은 책 ‘여덟 단어’(2013년)와 ‘책은 도끼다’(2011년)는 지난해 12월과 이달 연이어 100쇄를 넘겼다. 이 책들은 지금까지 각각 32만 부, 30만 부가 팔렸다. 최근에는 ‘다시, 책은 도끼다’(북하우스)를 펴냈다. 》
박웅현은 주로 주말에 집에서 책을 몰아 읽는다. 그의 사무실에도 출판사에서 보내온 책들이 꽤 있었다. 책을 고르는 법을 묻자 그는 “믿을 만한 지인이 추천한 책과 좋아하는 책을 쓴 작가의 다른 책, 고전”을 꼽았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0일 그와의 인터뷰는 서울 강남북을 오가는 연이은 광고주 미팅 사이에서 진행됐다. 작은 꽃무늬가 촘촘히 박힌 연회색 셔츠와 보트 슈즈가 인상적이었다. 신간 이야기로 말문을 연 그는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전 책에서)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뭔가 벅차오를 만큼 좋으면 그 얘길 나누고 싶다. 그런 마음이 컸다.”
“내가 광고를 했다는 거다. 광고는 시대의 문맥이다. 고전을 길거리의 용어로 전한 게 공감을 이끈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정확한 해석이 아닐 때가 많다. 하지만 난 잘못 읽는, 오독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쓴 사람의 의도 못지않게 읽는 사람의 독법도 존중받아야 한다.”
―이번 책을 비롯해 펴낸 책 중엔 강연 내용을 엮은 게 많다.
“쓴 책이 없진 않다. 뉴욕 유학 마치고 쓴 ‘나는 뉴욕을 질투한다’는 냄비 받침으로 쓰이다 절판됐고…(웃음), 광고 관련 책도 낸 적 있다. 긴 글을 쓰는 게 쉽지 않다. 카피라이터 경험 때문인지 문장 하나를 쓰는 게 너무 무섭다.”
―책에 딸 이야기도 종종 나온다. 딸도 책으로 키운 건가.(책 ‘인문학으로 콩갈다’의 저자이기도 한 그의 딸 박연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그랬다기보단, 자기 맘대로 컸다. ‘여덟 단어’의 주제(자존, 본질, 고전 등)를 보더니 ‘지겹다’는 말부터 하더라, 하하. 늘 해오던 이야기라 그런지 가족들은 내 활동에 무심하다.”
“유명해진 광고 카피 중에 혼자 힘으로 만든 것은 없다. 나는 (소설가) 한강이 아니니까. 운도 좋았다. 미디어 환경이 변했다. 내가 하는 일을 잘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젠 내가 잘하는 일을 잘해도 안 되는 시대다. 지금은 한 줄 카피에 사로잡히면 본질을 놓친다.”
―광고인은 스트레스가 높은 직업으로 꼽힌다.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은 없나.
“기자를 꿈꿨던 적도 있다. 동아일보 시험 봐서 떨어졌다. 회사에서 힘든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늘 내 삶을 영위하기에 확률적으로 더 괜찮은 쪽을 선택해 왔다. 어떤 직업이든 살아남는 건 힘든 일이다. 광고뿐이겠나. 그렇게 29년을 보냈다.”
―책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촉수’를 예민하게 해준다는 이야길 자주 했다. 촉수가 너무 예민하면 피곤하지 않나.
“내가 말하는 촉수는 가치를 알아보는 눈을 말한다. 책을 읽는다고 연봉이 오르진 않는다. 지하철에서 발을 밟히며 보내는 출근 시간은 똑같을 거다. 다만 그날 출근길에 스친 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흐뭇해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행복감은 다르지 않겠나. 삶이 풍요로워지려면 예민한 촉수가 필요하다.”
―50대 중반, 이제 그 촉수가 좀 무뎌지지 않았나.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