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악재에 롯데 ‘시계 제로’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와 끝이 보이지 않는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재계 5위 그룹 롯데가 흔들리고 있다. 신동빈 회장(사진)이 그룹의 성장동력으로 육성해온 화학, 서비스, 유통 등 3대 분야가 동시에 충격을 받으면서 그룹의 앞길은 ‘시계 제로’ 상태가 됐다. 계열사가 추진해온 주요 프로젝트가 줄줄이 철회되고 주가도 폭락하고 있다.
○ 화학, 서비스 분야 사업 일정 줄줄이 좌초
롯데그룹 ‘글로벌화’의 상징적 사업이던 미국 석유화학업체 인수건도 취소됐다. 롯데케미칼은 미국 액시올사를 인수해 총매출을 21조 원 이상으로 끌어올려 세계 12위 종합화학회사로 올라설 계획이었다. 롯데케미칼은 7일 이 업체에 대한 인수 제안서를 제출했다가 검찰 수사가 시작된 10일 “직면한 국내 상황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며 인수 계획을 접었다.
그룹 서비스 사업의 미래를 책임질 롯데월드타워는 주관사인 롯데물산의 노병용 대표가 구속됨에 따라 12월 22일로 예정됐던 완공 일정에 차질이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 주력 유통 부문에도 암운
다른 유통 부문인 롯데홈쇼핑은 9월부터 프라임 시간대를 포함해 하루 6시간(오전, 오후 8∼11시)씩 방송을 중지해야 하는 고강도 징계를 받았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과 관련해 대형마트인 롯데마트는 민형사상 책임을 질 일이 남아 있다.
○ 롯데그룹주 시가총액 1조3000억 원 증발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벌어진 뒤 롯데케미칼, 롯데쇼핑, 롯데제과 등 계열사 9곳의 시가총액은 2거래일 만에 1조3170억 원이나 증발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9일 종가 기준 25조6470억 원이던 9개 업체의 시가총액은 13일 24조3300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들 계열사의 주가는 같은 기간 평균 6.16% 하락했다.
검찰 수사가 알려진 첫날인 10일 이들 기업의 주가는 1% 안팎 하락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13일에는 롯데쇼핑(―5.38%), 롯데제과(―5.97%), 롯데손해보험(―6.43%) 등 주요 계열사의 주가가 5% 이상 급락했다. 이날 호텔롯데가 금융당국에 상장 철회 신고서를 제출하면서 롯데정보통신, 코리아세븐, 롯데리아, 롯데건설 등 다른 비상장 계열사들을 상장하려던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됐다.
○ 신동빈 회장은 경영권 분쟁 해결에 집중
롯데그룹의 주요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주가가 떨어지고 있지만 신동빈 회장은 해외에 머물고 있다. 대한스키협회장 자격으로 7일 멕시코 칸쿤 국제스키연맹 총회에 참석한 신 회장은 14일에 롯데케미칼과 액시올사가 합작해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 건설하는 에탄크래커 기공식에 참석한다. 이후 귀국하지 않고 곧바로 일본 도쿄로 건너가 이달 말에 열리는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형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이 주총에 신 회장에 대한 이사 해임 안건을 제출할 예정인 만큼 현지 주주, 경영진을 대상으로 한국 검찰의 수사 상황 등을 해명하며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백연상 baek@donga.com·주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