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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마을] 산 중턱 우뚝 솟은 ‘물통바위’…그 위용에 기댔던 삶의 소망들

입력 | 2016-06-14 05:45:00

전남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 운암산 중턱에 솟은 물통바위. 갈라진 틈 사이로 낙차 크게 떨어졌던 물은 이제 없다. 하지만 여기에 기대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원을 보낸 사람들은 여전히 그 영험함을 버리지 않고 있다. 고흥(전남)|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6. 두원면 운대리 금오마을

세밀한 생활사와 풍속사 혹은 세상의 어긋난 도리에 대한 풍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동안 윤색과 와전의 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그나마도 이야기를 낳은 공간에서 나고 자란 어르신들의 입이 아니라면 들을 수 없다. 콘텐츠로서 다양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 본래의 설화를 들여다보는 까닭이다. 넘쳐나는 대신 그만큼 사라져가는 진정한 스토리텔링 콘텐츠로서 설화의 가치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전남 고흥군은 땅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반도의 토양 위에서 먼 옛날부터 이야기가 풍성했던 곳이다. 조선시대 류몽인이 이 곳에서 ‘어우야담’을 쓸 수 있었던 한 배경이기도 하다. 웹툰과 애니메이션, 영화와 드라마 등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의 또 다른 원형일 수도 있을 고흥의 설화를, 스포츠동아가 매월 격주 연재한다.

운암산서 흘러내린 물 폭포 이뤘던 곳
“100년전 한센인들의 병 고쳐준 바위”
‘불변함의 위용’ 마을사람들 기원 대상
옥녀봉엔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이…


전국 곳곳에 산재한 구전의 이야기들 가운데에는 자연이 낳고 기른 것들과 관련한 게 많다. 바위 역시 마찬가지다. 유구한 세월 속에서 바위는 조금씩 깎이곤 하지만 본래의, 혹은 본래의 것이라 추정되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리란 믿음 때문일 것이다. 쉽게 변하지 않는 불변함과 그 위엄(‘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인용)은 시간의 흐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교훈이 되고, 인간은 이를 다시 자신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대상으로 삼았을 터이다.

● 물통바위…미래 기원의 징표

전남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 일대에도 바위와 연관된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물통바위와 옥녀봉에 얽힌 이야기다.

물통바위는 두원면 운대리 금오마을을 품고 우뚝 선 운암산에 있다. 운암산에서 발원한 물이 금오마을을 향해 20여m 높이의 폭포를 이뤘고 이는 사람들에게 영험함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바위를 사이에 두고 물이 내린다 하여 물통바위로 이름 붙였다.

이 마을 주민 이종범(72)씨는 “100여년 전에 한센인들이 물통바위 옆에 움막을 짓고 치성을 들여 병을 치유했다고 한다”면서 “이 곳에서 기도도 하고 목욕도 하면서 지냈다”며 관련 설화를 들려주었다.

그 후로도 이 곳은 무속신앙의 또 다른 공간이 되기도 했다. 이씨는 “한동안 솥 등 살림살이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했다”면서 “전국에서 무당들이 찾아들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어느날 벼락이 바위를 치면서 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물을 더렵혀 산신의 노여움을 산 것이다.”

이종범씨는 물통바위와 그 폭포에 물이 마른 것을 두고 “실상은 기상의 변화에 따라 가뭄이 잦고 또 나무가 숲을 이루고 우거지면서 물이 더 이상 내려오지 않게 된 것이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의 말을 따르자면, 어쩌면 물통바위 이야기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을 막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것이 토속의 신앙이든, 기복의 사상이든, “자손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곧 이 같은 의미를 자연물에 덧붙이게 했음이다.

“세상살이가 갑갑허니 그런 믿음을 갖는 것 아니겠나.”

● 옥녀봉…이루지 못한 사랑의 비극

남녀의 사랑은 때로 전설을 낳고 설화가 되어 후세에 전해진다. 옥녀봉의 설화도 그렇게 태어났다.

서로 원수지간이었던 집안에서 각기 태어난 도공과 옥녀. 서로 사랑했지만 현실은 장벽이 되었다. 이내 산골짜기로 도망간 두 사람은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하지만 사랑은 밥을 주지 않았다. 도공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잠시 집을 비웠다. 직후 커다란 독수리가 찾아와 옥녀를 죽이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온 도공은 옥녀의 한(恨)을 풀어주기 위해 독수리를 찾아 떠났다. 옥녀는 마을 촌장의 꿈에 나타나 자신의 사연을 알리고 다음날 독수리가 나타나면 죽여 달라 청하였다. 이에 촌장은 다음날 하늘에 나타난 독수리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고 화살은 독수리의 심장을 뚫었다.

독수리가 떨어진 곳에선 이미 도공이 옥녀를 그리워하며 울고 있었다. 이후 옥녀가 죽은 바위는 ‘옥녀봉’이 되었다.

이처럼 바위는 사람들의 세상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또 하나의 영물(靈物)이기도 하다.

현실이 가로막은 사랑은 한이 되었다. 한은 독수리로 상징되는 또 다른 비극을 몰고 왔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를 마냥 앉아 두고 보지만은 않았다. 사람들은 바위에 자신들이 현실에서는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어떤 소망과 희망 그리고 위안을 찾으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 TIP  설화란?

사람들 사이에 오랜 시간 구전(口傳)돼 내려오는 이야기. 신화와 전설, 민담을 포괄한다. 일정한 서사의 구조를 갖춰 민간의 생활사와 풍습, 권선징악의 가치 등을 담은 이야기다.


● 물통바위 가는 길

남해고속도로 고흥 IC→고흥 방면→한천교차로에서 도양·녹동 방면 우회전 뒤 동강·오월리 방면 좌회전→한천교차로에서 도양·고흥 방면→우주항공로 직진→운대교차로에서 두원·운대리·고흥만방조제 방면 우측 방향→운대삼거리에서 금오마을 방면 좌회전→모동마을회관 문의

고흥(전남)|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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