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성 경제부장
업계가 대책으로 내놓은 모금 목표 달성 방안은 부실하기 이를 데 없다. 개별 업체가 건설공제조합에서 받는 배당금의 일부를 기금에 출연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인데 언제까지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구체적인 일정은 빠져 있다. 당초 목표 시점은 지난해 말이었다. 업계가 실현 가능성도, 의지도 없는 약속을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업계도 이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무엇보다 정부의 엇박자 정책에 대한 불만이 컸다. 정부는 지난해 8월 ‘광복 70주년 특별사면’의 일환으로 건설 분야 행정제재 처분 특별 해제 조치를 발표했다. 핵심은 입찰 담합 등의 혐의로 공공기관 공사 입찰 참가 제한 조치를 받은 건설사 2200곳에 대한 행정제재를 풀어준다는 것이다. 특별사면 결정에는 주무 부처인 국토부뿐만 아니라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11개 부서가 참여했다. 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건설업계가 추진한 이벤트가 2000억 원짜리 사회공헌기금 모금이었다.
3조 원에 이르는 과징금과 손배액을 준비해야 하는 건설업계에서는 “열심히 벌어봐야 이익 내기도 어렵다”는 푸념이 나온다.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 주요 건설사의 1분기(1∼3월) 실적을 보면 이는 엄살이 아니다. 영업이익을 냈지만 과징금을 반영하면 당기순이익이 적자로 돌아서거나 전년 동기 대비 반 토막 나는 곳이 적잖다. 이런 상황에서 2000억 원의 사회공헌기금 모금에 선뜻 나설 여력이 있는 업체는 없다.
건설업계가 공공공사 입찰에 담합함으로써 부당 이익을 취득했고, 그만큼 국민에게 손실을 일으킨 점은 지탄 받아 마땅하다. ‘경제검찰’을 자임하는 공정위가 원칙대로 업무를 처리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지난해 실시한 정부 대사면의 취지를 고려할 때 과징금 규모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지적 또한 무시하기 어렵다. 당시 정부는 ‘내수 진작 및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건설산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행정제재 해제 조치를 통해 재도약의 기회를 제공하고 건설업체가 서민경제 활력 제고 및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올 하반기에 국내 경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구조조정 작업이 본격화하면 대규모 실업에 경기 침체의 골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한국은행은 10일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 전격 인하라는 깜짝 조치를 단행했다. 기재부도 ‘추경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공정위나 공사 발주처도 이런 경기 흐름에 맞게 처벌 수위를 적절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 18일은 정부가 지정한 69번째 ‘건설의 날’이다. 생일 선물로 그만한 게 없을 것 같다.
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