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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펜스의 한국 블로그]판정에 흥분하는 한국인 vs 자책하는 서양인

입력 | 2016-06-14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그레고리 림펜스 벨기에 출신 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

나는 우리 아버지처럼 테니스광이다. 공 치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한테 배웠다. 첫 라켓을 들게 된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나이에 시작해 ‘테니스 바이러스’에 일찍 걸렸다. 학창 시절 내내 규칙적으로 쳤고, 특히 사춘기 몇 년 동안 일주일에 두세 번씩 테니스클럽에서 열심히 훈련받았다. ‘플레이 테니스’란 전문 월간지를 구독하기도 했다. 매달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다 잡지가 우편으로 도착하자마자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그 자리에서 읽곤 했다. 봄, 여름 대회에도 몇 번 나갔는데 벨기에는 테니스가 워낙 인기 스포츠라 경쟁이 심했다. 괜찮은 랭킹에 이른 적은 없지만, 늘 즐겁게 쳤다.

젊은 테니스광으로서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1989년 롤랑가로스 프랑스오픈이었다. 오래전부터 좋아해 왔던 어린 아웃사이더 마이클 창 선수가 천재적으로 우승한 해였다. 그리고 1년 뒤 1990년 6월에 벨기에 학교 선생들이 총파업을 해서 롤랑가로스에 더욱 몰두하게 됐다. 파업이 며칠밖에 안 걸릴 줄 알았는데 결국 거의 한 달간을 학교에 못 갔고, 그해 기말고사조차 취소됐다. 한국인에겐 상상도 안 되겠지만, 당시 프랑스어권 벨기에 초중고교 학생들이 모두 한 달 동안 집에서 빈둥거렸다. 나는 프랑스오픈 경기를 2주 동안에 걸쳐 하루 종일 TV로 봤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저녁까지 볼 수 있는 게임은 빠짐없이 다 본 것 같다. 밤엔 하이라이트도 다시 보고.

그러다 대학생 때는 열심히 노느라 나도 모르게 한참 동안 테니스를 무시하게 됐다. 한국에 올 때도 테니스 라켓을 갖고 왔지만, 3년간 한두 번밖에 만지지 않았다. 한국 직장생활에 휩쓸려 테니스 친구를 찾아볼 생각도 못했다. 그러다 2008년 운이 좋게 다시 규칙적으로 주말에 공을 치게 되며 오래도록 깊은 잠에 빠졌던 내 안의 ‘테니스 바이러스’가 갑자기 깨어나게 됐다. 그동안 테니스를 그리워했던 걸 실감하지 못했는데, 다시 시작해 보니 친한 친구와 오랜만에 재회한 듯 행복함을 느꼈다. 게다가 한국인과 함께 치는 건 처음이었다.

한국 사람은 서양인과 다른 방식으로 테니스 게임에 접근하는 것 같다. 우선 유럽에선 단식이 기본이지만, 한국은 거의 복식으로만 친다. ‘서울에 테니스장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했는데 한국인의 사교적인 성격에서 비롯된 것인지 복식을 더 선호하는 듯하다. 한국 사람은 운동할 때도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코트 옆에 기다리는 선수들을 열정적으로 응원해 주는 것도 흔한 일이다. 테니스장에 대한 태도도 서로 다른 것 같다. 한국인은 착하게, 젠틀하게 치는 편이라면 서양인은 기본적으로 경쟁심이 조금 더 강한 것 같다. 예를 들어 한국에선 경기를 할 때 상대방이 쉬운 공을 실수로 ‘낭비’하게 되면 ‘생큐’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욕심이 세서 질 줄 모르는 유럽인에겐 기분 나쁜, 도발적인 발언처럼 받아들일 수 있으니 서로 그런 말은 아예 삼간다.

테니스장에서 소리 내 고함치는 방식도 다르다. 서양인은 플레이가 잘 안 되면 자기한테 스스로 화내는 모습을 보여 주는 일이 흔하다. 반면 한국인은 보통 다른 선수랑 논의할 때 제일 시끄럽다. 공이 라인에 닿았는지 아웃인지를 판단할 때 흥분한다. 선수 네 명, 그리고 옆에 있던 선수들까지 흥분해선 강하게 논쟁하는 장면을 몇 번 목격했다. 그래도 일반적으로 한국 선수들은 페어플레이를 하는 편이며 쾌활하다. 전략적으로 똑똑하게, 또 재밌게 치는 편이다.

테니스 동호회 덕분에 잃어버렸던 즐거움을 되찾게 됐다. 이제 테니스 없는 생활은 생각도 할 수 없다. 여전히 가끔 유튜브에서 테니스 동영상을 찾아볼 정도로 테니스광이다. 지지난주 서울시청 앞 ‘롤랑가로스 인 더 시티’에 두 번이나 갔다. 거기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야외 생방송을 즐겼다. 테니스는 직접 치든 관람을 하든 멋있고 흥미로운 스포츠다. 몸 관리만 잘하면 60, 70대까지 계속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장점이다. 우리 아버지는 현재 67세인데, 아직도 매주 테니스를 치신다. 나도 그러고 싶다. 열정적으로 운동하는 게 행복하게 나이 먹는 방법인 것 같다.

그레고리 림펜스 벨기에 출신 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