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커플 “우린 롱디 스타일”
○ 요즘 연애는 롱디 스타일?
대학가를 돌며 이 스타일의 실체를 탐색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중교통으로 1시간 이내로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살아도 ‘장거리 연애’ 스타일을 추구하는 연인들이 곳곳에 존재했다. “저는 서울 광진구, 남자친구는 구로구. 남친은 직장인이고 저도 학교생활이 치열하죠. 평소에는 서로 간섭하지 않고 자기 삶에 몰두해요. 주말에 한 번 봐요. 장거리 연애를 하는 느낌이죠.”(대학원생 최모 씨·26)
거주지가 가까운 커플 중 상당수도 최 씨처럼 일명 롱디 스타일 연애 행태를 보였다(그래픽 참조). “사귄 기간이 길어도 자주 안 만나면 애틋함이 유지돼요. 가끔 보면 감동 두 배!”(대학생 김연정 씨·24)
○ 사랑의 물리적 거리는 몇 km?
아! 눈물겨운 생이별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자발적 롱디 커플이 이렇게 많다니…. ‘안 보이면 마음이 멀어진다’는 속담부터 ‘사랑은 지리(地理)로 죽는다’는 에리히 케스트너(독일 소설가)의 격언이 생각났다. 사랑이 유지되는 물리적 거리를 계산한 연구마저 존재한다. 미국 사회학자 보사드는 남녀 사랑에서 지리적 근접성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부부 5000쌍을 분석해 보니 45%가 5블록 이내에 살았었다. ‘거리가 멀수록 사랑할 확률이 떨어진다’는 보사드 법칙을 만든 후 그는 외쳤다. “큐피드 화살은 멀리 날아가지 못 한다.”
인지심리학적으로 봐도 가까이 있어야 ‘단순노출효과’로 남녀 간 애정이 증폭된다. 그런데 왜 롱디 스타일? 결혼정보업체 ‘듀오’ 이명길 연애코치의 설명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효율성’입니다. 사랑에 올인(다걸기)은 없어졌어요. 걱정할 게 너무 많잖아요. 취업, 학점, 스펙, 데이트 비용….”
“제한된 자원을 잘 써야죠. 김밥천국에서 일곱 번 만나는 것보다 레스토랑에서 한 번 만나는 걸 선호합니다.”(대학생 김성준 씨·27)
미국 유학 중인 이기선 씨(26)는 한국에 있는 남자 친구가 멀리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메신저나 화상전화로 수시로 얼굴을 봐요. 붙어있는 것 같죠.”
테크놀로지도 연인 간 거리감을 없애고 있다. 문신일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는 ‘실재감(Presence)’ 이론을 꺼냈다. “물리적으로는 다른 장소에 있는 상대를 봐도 생동감이 느껴지죠, 실재감이 ‘상호작용성’을 만들고, 옆에 있는 듯한 공감각을 구성합니다.”
장거리 연애를 넘어 사랑을 피자 조각처럼, 즉 여러 사람에게 자신의 사랑을 나누고 여러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는 ‘분산 연애’도 유행 중…. “적절히 사귀다 다른 인연이 생기면 ‘쿨’하게 털어낼 수 있을 정도로만 연애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요.”(대학생 구연석 씨·23)
우리는 뻔히 차일 것이 예상되면서도 모든 걸 걸었던, 이성에게 차인 후 감정의 진흙탕을 소주로 버텨야 했던 ‘그 시절’ 연애가 생각났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가 우리를 달랬다. “요즘 젊은이들은 감정 조절, 즉 자기 본능을 그대로 두지 않는 것에 숙달돼 있어요. 어린 시절 입시 경쟁 속에서 ‘졸립다’는 본능까지 억누르면서 체화된 거죠.”
김배중 wanted@donga.com·김윤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