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휴먼’ 관련 서적 꾸준한 인기
올해 3월 열린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대국 장면. 알파고의 4-1 승리가 안긴 충격은 ‘어떻게 살 것인가, 향후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아일보DB
특히 인공지능 이슈가 초기와 달리 ‘2라운드’에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동안 “이제 실업자 되는 거 아니냐”는 식의 충격과 불안에 휩싸여 인공지능의 정체를 궁금해했지만 지금은 인공지능을 포함해 ‘어떻게 살 것인가,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예지들은 이번 여름호에 ‘포스트 휴먼’ 시대의 철학과 윤리를 본격 조명하는 기획을 잇달아 실었다.
이경란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HK연구교수는 포스트 휴먼과 관련된 여러 담론들을 개괄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 육체와 기계를 결합시켜 한계를 극복할 것이라는 ‘트랜스 휴머니즘’과 같은 긍정적 전망과 젠더(사회적 성), 계층, 인종, 민족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교차한다는 것.
‘대산문화’도 여름호에서 특집 ‘포스트 휴먼 시대의 징후와 전망’을 실었다.
단행본 시장에서도 인공지능 이슈가 주변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다루고 있지 않더라도 인류의 미래에 관한 책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김영사)은 환경 인구 기후변화 불평등 등 세계적 문제의 해결 방안을 모색한 책인데 4월 말 발간 이후 한 달 반 만에 출판사의 5개월 판매 예상치인 1만7000부가 나갔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인공지능 이슈 초기엔 기존 축적된 삶의 경험이 통째로 부인된다는 두려움과 함께 ‘인공지능이 무엇인가’ 라는 데 관심이 모였다면 이제는 어떻게 인간다운 삶을 지키고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로 관심이 옮겨졌다”고 말했다.
기술이 만능으로 인식되는 분위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환경과 자연 등에 주목하는 서적의 판매도 증가하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이세돌-알파고의 대국 전후 4개월 동안 생태·환경 항목의 도서 판매량은 5421권에서 7100권으로 31% 늘었다. 동물 권익 옹호를 주장해 온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생명윤리학 석좌교수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시대의 창)는 2014년 나왔는데 올 3, 4월 판매가 평소의 4배로 늘어나는 ‘역주행’을 했다. 이 책은 물질 소비에 기초한 사회의 폐해를 철학적 관점에서 지적한다.
서점들도 추세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오서현 경기 고양시 한양문고 마두점장은 “최근 인문 서적 진열대의 4분의 1을 ‘사라진 벌들의 경고’를 비롯해 자연과 문명 비판 관련 서적으로 채웠다”며 “최근 이처럼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책들의 판매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