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블 ‘디토’ 연주 위해 내한한,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피 재키브
미국에 거주하며 2008년부터 한국을 오간 스테판 피 재키브는 “세계 곳곳에서 한국의 문화, 상품이 인기를 끌기 시작해 나도 모르게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크레디아 제공
그는 평범하지 않은 집안 내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외할아버지가 수필가 고 피천득 선생(1910∼2007)이다. 부모(피서영 보스턴대 물리학 교수, 로먼 재키브 매사추세츠공대 물리학 교수)는 저명한 물리학자다. 2008년 앙상블 ‘디토’로 처음 국내서 연주 활동을 시작했을 때 이런 집안 내력에 가려 그의 음악성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는 9년간 함께한 앙상블 ‘디토’와 1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빈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 위해 최근 내한했다. 28일 같은 장소에서 피아니스트 임동혁과도 협연한다.
그의 이력과 재능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뒤 뉴잉글랜드음악원을 졸업했다. 데뷔 20년 차로 뉴욕 필하모닉, 런던 필하모닉 등 정상급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하며 스타 연주자로 거듭났다.
그래도 피는 속일 수 없는 법. 글도 쓴다. 자신의 공연 프로그램 책자의 글을 직접 쓰고, 시간이 날 때마다 페이스북 등에 자주 글을 남긴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요. 다만 음악만큼 노력하지는 않아요. 전 제가 작가가 되지 않은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됐다면 외할아버지의 그림자를 항상 느꼈을 것 같아요.”
그는 “외할아버지는 내가 음악가인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을 것”이라며 일화를 하나 들려줬다. “어머니가 고등학생 때 글짓기 대회에 참가했는데, 외할아버지가 심사위원이었어요. 외할아버지가 대회 결과 발표를 앞두고 어머니를 불러 한 작품을 가리키며 제일 잘 썼다며 칭찬했대요. 근데 바로 그 작품이 어머니의 글이었던 거죠. 외할아버지는 어머니가 작가가 될까 봐 어머니 글을 탈락시켰대요. 하하.”
30대가 되면서 그는 음악에 대한 생각이 변했다. 연주 잘하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작곡가의 메시지를 얼마나 잘 전달하고, 얼마나 관객이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우선 생각한다. “연주자들은 흔히 관객이 그냥 음악이 좋아 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관객은 바쁜 시간을 쪼개 비싼 티켓을 사서 와요. 그런 관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연주자의 의무죠.”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