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화엄사 각황전
못난이는 누구든지
지리산 화엄사 각황전에 가볼 일이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새든 벌레든
꽃이든 나비든 흙이든 물이든 그 무엇이든
꼭 한번 가볼 일이다
가서 깨달을 일이다
중생이 어떻게 부처가 되는지를
그 부처가 얼마나 멋진 화엄세상을 만드는지를
뒤틀어진 몸으로 서 있는 기둥은 나무부처
돌계단에 드러누운 장대석은 돌부처
빛바랜 단청 속에는 나비부처
용마루에는 이끼 낀 기와부처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부처, 부처, 부처
하찮은 중생도 여기서는 부처가 되나니
거지같이 살아온 인생도 황제가 되나니
누구나 별 볼일 없이 걸어온 길 억울하거든
전라남도 구례 땅 화엄사 각황전에 가볼 일이다
가서 못난이 부처나 돼볼 일이다
부처 못 되면 부처 구경이라도 하고 올 일이다
들리느니, 오늘도 사바세계는 어찌 이리 편안치가 않으냐. 사람 목숨만큼 높고 큰 것이 달리 없거늘 저 순하고 어린 생명들이 아무 지은 죄도 없이 지구촌 곳곳에서 총탄에 쓰러져 가고 있느니!
여기 ‘구례 화엄사 각황전’(국보 67호)에 나란히 앉아 중생제도의 염불을 하고 계신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다보불 삼여래(三如來)와 묘연, 문수, 관음, 지적 네 보살께서 차마 법문을 내리지 못하겠구나.
각황전은 기둥과 면석, 갑석 등 통일신라시대의 가구식(架構式)기단을 그대로 활용하여 옛 모습을 재현토록 하였다. 또한 건물 가운데 불단 아래에는 돌에 새긴 화엄경석(華嚴經石)이 수장되었는데 황룡사 승려 연기조사가 경덕왕 13년(754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화엄경을 사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시인은 “부처 못 되면 부처 구경이라도 하고 올 일이다” 했으니 다시는 억울한 죽음 없는 화엄세상을 빌고 올 일이다.
이근배 시인·신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