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도, 아이도 아니어서 방황하는 사춘기 소년의 심정은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고뇌하는 창작자의 마음과 비슷하다. 2년 만에 컴백한 남매 그룹 악동뮤지션이 새 앨범에 ‘사춘기 上’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다.
실제 경험한 그 시절의 갈등과 사랑을 노래해 각종 음원 차트를 ‘올 킬’ 했지만 고민이 끝나지 않은 두 ‘악동’ 뮤지션을 초여름의 길목에서 만났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나 있을 곳 없다 / 가까워도 먼 우리 사이 /
사람들은 모두 내가 달라졌다고 해 /
내 눈엔 그들이 변했는데… / 아무 사람도 내 맘에 끄덕이지 않아 /
웃어주는 게 뭐 어렵다고 / 사람들은 모두 내가 외계인 같다 해 /
차라리 진짜면 이해가 돼 /
알게 될수록 멀리하고 싶은 세상…’
-악동뮤지션 2집 〈사춘기 上〉의 수록곡 ‘주변인’ 중에서
이들 남매는 정규 교육과정을 밟지 않고 2008년부터 선교사인 부모님과 함께 몽골에서 지내며 홈스쿨링을 했다. 이들의 남다른 성장 과정은 악동뮤지션이 추구하는 자유로운 음악에 밑거름이 되고 있다. 2집 앨범 작업에서도 마찬가지. 이번 앨범은 1집보다 완성도가 높고 중독성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에서도 수록곡을 모두 타이틀곡 후보에 올려놓고 마지막까지 고심했을 정도. 그 때문에 〈사춘기 上〉의 타이틀곡은 이례적으로 두 곡이 선정됐다. 이별의 상처와 자신의 미숙함을 담담하게 표현한 밝은 재즈풍의 노래 ‘리바이(RE-BYE)’와, 사람의 행동과 심리를 경쾌한 멜로디에 녹여낸 댄스곡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다. ‘RE-BYE’는 세상에 공개되자마자 각종 음원 차트를 석권했으며, 다른 수록곡도 모두 10위권 안에 드는 진기록을 세웠다.
앨범을 발매한 지 두 주 남짓 지난 5월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자리한 YG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만난 두 ‘악동’ 뮤지션은 외모는 살짝 성숙해지고, 마음의 키는 훌쩍 자란 느낌이었다. 어른들의 세상에서는 그저 그런 일상이 반복된 짧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를 지난 2년 새.
# 사춘기 上_아버지와의 갈등, 다이어트가 가장 힘들어
▼ 남매가 듀엣으로 활동하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겠죠?
수현_단점은, 너무 오래 붙어 있으니까 힘들죠. 싫죠. 좀 지겹죠. 그래서 저희는 늘 색다른 걸 원합니다(웃음). 사실 오빠와 같이 있으면 공과 사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요. 공적인 자리에 갔을 때 감정이나 행동을 컨트롤하는 게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지금도 가끔 헷갈리긴 하지만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 이번 앨범에 ‘사춘기 上’이라는 제목을 붙인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찬혁_1집 앨범으로 활동할 때는 풋풋한 감성을 표현하기 좋은 나이였지만 2년이 흐른 지금은 저나 수현이나 좀 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나이가 됐죠. 근데 아직은 풋풋하고 가벼운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대중의 바람도 무시할 수는 없잖아요. 대중이 원하는 풋풋함과 저희가 추구하는 어른스러움의 중간 단계를 노래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아이와 어른 사이에 놓인 사춘기의 감성을 음악에 담았죠.
▼ 두 사람에게도 사춘기가 흔히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였나요.
그때는 가난해서 집 안의 불도 다 꺼놨어요.
해 뜨면 일어날 시간이고 해 지면 잘 시간이었죠. 홈스쿨링을 하고 있어서 밖에도 안 나가고 침묵 가운데서도 똘똘 뭉쳐 있었죠. 그런 답답함이 너무 싫어서 탈출하고 싶었는데 그걸 행동으로 옮길 용기는 없었어요. 그래서 아빠와의 불편함이 오래갔어요.
수현_이번 앨범의 수록곡 ‘주변인’의 노랫말 가운데 ‘외계인’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아빠에게 들은 말이에요. 아빠는 자신과 오빠가 다른 성격이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려 하지 않았어요. 그게 문제였죠. 아빠가 오빠에게 ‘넌 어느 별에서 왔니? 내 아들 맞니?’ ‘외계인 같다’고 말해서 오빠도 상처를 받아 침묵하게 된 거예요. 저는 오빠랑 성격 자체가 달라요. 제 의견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편이어서 사춘기에도 부모님과 부딪히진 않았어요. 오빠는 말없이 길게 사춘기를 보냈다면 저는 짧고 굵게 겪었어요. 좀 예민해지고 땍땍거려서 부모님에게 잔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그때 제가 다이어트를 하고 있어서 오빠가 피해를 봤죠.
찬혁_수현이가 다이어트로 예민해져서 성질을 자주 내니까 부모님도 수현이 편을 드셨어요. 예를 들어 제가 치킨을 먹고 있으면 “그게 오빠인 네가 수현이 앞에서 할 일이냐?”는 핀잔도 주고요. 본의 아니게 필요하지도 않은 다이어트를 같이 할 수밖에 없었어요.
수현_오빠가 뭘 먹고 있으면 좀 얄밉긴 했어요. 제가 식탐이 정말 많은데 4~5개월 동안 식단과 운동으로 다이어트를 하다 보니 세상 모든 일에 예민해지더라고요.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 거지?’ 싶을 정도로 힘들었죠. 그런데 결과가 좋으니까 성취감은 확실히 높았죠.
# 사춘기 下_음악으로 부모와 소통하는 방법 배워
▼ 8kg을 감량했다고 들었는데 비결이 뭔가요.
수현_소속사의 트레이닝 코치님에게 개인 지도를 받으면서 매일 유산소 운동과 근육 운동을 병행했어요. 식사도 단백질과 탄수화물, 과일, 채소를 완전 소량씩 골고루 먹어 요요가 안 오게 관리하고요. 그 덕분에 끼니를 굶지 않고 건강하게 뺐어요.
▼ 사춘기에 흔히 하는 이성이나 친구, 학업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요.
찬혁_저도 했죠. 이번 앨범을 만들 때도 공부, 짝사랑, 친구, 그리고 무엇보다 꿈에 대한 고민을 담는 데 중점을 뒀어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까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다 몽골로 갔어요. 몽골에 있을 때는 친구들끼리 똘똘 뭉쳐야 했어요. 한국 친구들이 별로 없어서 한번 소외되면 다시 속할 데가 없는 거예요. 그런 경험과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면서 노래를 만들었어요.
수현_저는 연애나 남자친구, 친구들에게 관심이 있었어요. 저희 둘 다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고 친구를 무척 좋아했어요. 학교에 다니고 싶었던 이유도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서였어요.
▼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대시한 적도 있나요.
찬혁_저는 있어요. 백이면 백 반응이 다 좋았어요. 하하하. 눈물 나는 첫사랑도 해봤어요. 사춘기 시절에요.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노래로도 표현할 수 있는 거고요. 사랑 경험이 많진 않아요. 한번 사귀면 오래가거든요.
수현_저는 대시를 못 했어요. 그럴 용기가 없어서 속으로만 좋아했어요. 흔히들 ‘썸’이라고 하는 것까진 해봤는데 아직 첫사랑은 못 했어요. 눈물 나는 첫사랑, 저도 해보고 싶어요.
▼ 이제 부모와의 대화법을 터득했나요.
찬혁_제가 처음 터득한 대화법이 작사와 작곡이었어요. 제 생각을 노래로 써내려가니까 그 안에 제 심정이 담겼죠. 아빠가 기타 치는 걸 곁눈질로 배워서 노래를 만들었는데 그걸 부모님이 들으며 가사에 집중하시더니 ‘찬혁이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고 이해해주셨어요. 그때부터 저를 존중해주셔서 저도 자신감을 찾게 됐죠. 어떻게 보면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가 저를 음악에 빠지게 만든 원동력이었던 거죠.
싱어송라인터인 오빠 이찬혁은 사춘기에 겪은 그런 경험에 작가적 상상력을 불어넣어 2집 앨범을 만들었다. 매력적인 보컬리스트인 동생 이수현은 6개의 수록곡 가운데서도 ‘주변인’을 가장 마음에 들어했다. 반면 이찬혁은 모든 수록곡에 애착이 간다고 했다.
“다 제가 낳은 자식 같아서 어느 하나 애착이 가지 않는 노래가 없어요(웃음).”
그는 지금도 어깨너머로 배운 기타로 작곡을 한다. 미디 등 작곡가들이 흔히 쓰는 기기 다루는 법을 새롭게 배우고 있는데도, “악동뮤지션의 노래는 기타를 튕기며 만들어야 제맛이 난다”는 게 이유였다. 현재 그가 안고 있는 숙제는 누구나 노래방에서 완곡을 부를 수 있을 만큼 쉽고 간결하며, 사람들에게 오래 불릴 수 있고 언제 들어도 좋은 노래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있는데 대중의 선호도도 고려해야 하니까 좀 헷갈려요. 뮤지션은 자기 음악을 통해 좀 더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잖아요. 그렇다고 제 고집만 부리면 대중과 멀어지겠죠.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찬혁)
“저도 헷갈려요. 오빠가 만든 노래들의 색깔이 다양하듯이 제 보컬도 다양해지고 있고 또 그래야 하는데, 대중이 원하는 건 데뷔하기 전의 청아한 목소리인 것 같아서요. 하지만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 되기 때문에 여러 장르의 노래를 소화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다양한 시도를 하며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죠.”(수현)
# 현재_용돈 타 쓰고 검소한 생활 즐겨
▼ 노래를 만들거나 부르는 것 말고 평소 즐기는 취미가 있나요.
수현_춤추는 거 좋아해요. 저희 둘 다요.
찬혁_시간이 날 때는 그림 그리기를 즐겨요. 제대로 배운 게 아니라서 물감 쓰는 건 잘 못해요. 연필로 주로 그리죠.
수현_오빠 그림은 특이해요. 오빠가 항상 하고 싶어하는 게 메시지 전하는 거예요. 노래할 때도 메시지를 중요하게 여기듯이 그림을 그릴 때도 메시지를 담으려고 해요. 오빠는 주로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저는 뷰티에 관심이 많아서 몸에 그리는 걸 좋아해요. 메이크업, 네일 아트 같은 거요. 요즘은 패션에도 관심이 많아졌어요. 이번에 관심이 생긴 게 운동이에요. 운동 정말 안 좋아하는데, 이왕 할 바에는 재미있게 하고 싶어서 클라이밍과 수상스키에도 도전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 데뷔한 후 수입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요.
찬혁_부모님이 모두 관리하시고 저희는 용돈을 타서 써요. 전에는 용돈을 안 받고 필요한 게 있으면 부모님과 상의해서 살지 말지 결정했는데, 이제는 저도 성인이 되었고 어차피 나중에 스스로 돈 관리를 해야 하니까 지금부터 작게라도 시작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편의점이나 서빙 알바를 했을 때 받을 수 있는 금액을 부모님께 용돈으로 요청해서 그걸로 적금도 들고 사고 싶은 것도 사고 금전출납부도 써보고 있어요.
수현_저도 용돈을 받고 있어요. 제 또래 학생들이 받는 것보다는 좀 넉넉하게요.
쇼핑을 한다면 가장 사고 싶은 것이 뭔가요.
수현_가방요. 예쁜 핑크색 핸드백. 핑크색 좋아하거든요. 브랜드 제품이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명품을 별로 안 좋아해요.
찬혁_저는 안경을 사고 싶을 것 같아요. 안경을 수집해 여러 개가 있는데 특이한 걸 보면 또 사고 싶더라고요. 제 안경에는 알이 없어요. 시력이 나쁘지 않거든요. 〈K팝스타 2〉에 출연할 때 박진영 선배님이 안경이 제 이미지에 잘 맞는다고 하셔서 계속 끼게 됐는데 이제는 안경을 빼면 허전해요(웃음).
▼ 둘 다 검소하군요.
찬혁_부모님의 영향이 커요. 저희 부모님은 저희에게 항상 좋은 옷을 사주려고 하시지만 정작 두 분은 검소하게 생활하세요. 저희가 좋은 옷을 사드려도 허름하게 입으시고, “아까워서 어떻게 입니?” 하세요. 얼마 전 엄마 생일에 저희가 용돈을 모아서 30만원짜리 가방을 선물했어요. 근데 엄마가 “이렇게 비싼 걸 멜 수 있겠니?” 하시며 아끼시더라고요.
수현_엄마 나이가 40대 중반인데 지금도 틴트 같은 걸 바르시는 거예요. 그런 건 애들이 바르는 거니까 고급스러운 립스틱을 사드리고 싶어서 화장품 매장에 같이 갔어요. 그런데 가격이 3만~4만원이라고 하니까 “이걸 어떻게 발라?”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사드리니까 찔끔찔끔 아껴 바르고 계세요. 바를 때마다 상표를 보이면서요. 그 모습이 정말 귀엽다니까요(웃음).
▼ 부모님은 요즘도 몽골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수현_아버지만 몽골에 왔다 갔다 하세요. 어머니는 저희와 함께 지내시고요.
# 미래_초심 지키며 노래하는 남매로 남고 싶어
▼ 타임머신이 발명되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
찬혁_사춘기였던 16~17세 때로 가보고 싶어요. 그때 느낌을 알고 싶어요. 지금처럼 떠올리는 게 아니라 그때의 감정을 오롯이 느껴보고 싶어요.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앨범 작업을 하면 훨씬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수현_저는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없어요. 상황을 바꾸고 싶을 만큼 힘든 일이 있었지만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지금의 저를 만든 발판이라 생각하고 현재에 만족하기 때문에 타임머신은 절대 타지 않을 것 같아요. 근데 오빠가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보고 싶기도 해요. 오빠의 누나가 돼서 ‘이찬혁’ 하고 큰 소리로 불러보고 싶어요. 동생이어서 억울해요. 오빠에게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하게 하거든요(웃음).
가수의 꿈을 이룬 동생도, 천재적인 싱어송라이터로 평가받는 오빠도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음악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인즉슨 이렇다. 팬들에게 사랑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들의 꾸며진 모습뿐 아니라 민낯까지 아는 가까운 이들에게 사랑받아야 정말 사랑받는 느낌이 들 것 같고, 그런 사랑을 자양분 삼아야 좋은 음악이 나오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 이들 남매는 2집을 낸 후 보다 많은 이들과 만나기 위해 발품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저희 노래를 기다려온 분들을 위해 오랜만에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어요. 이렇게 계속 노래하는 남매로 남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수현)
“1집 앨범으로 활동할 때는 아이였는데, 스무 살이 넘으니 어른들의 생각이 이해가 되기도 해요. 근데 어른들의 편에 서버리면 초심을 잃은 느낌일 것 같아요. 1집으로 활동할 때의 마음이 초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 목표는 누구에게도 상처가 되지 않는 노래를 만드는 거예요. 어느 한쪽을 공격하거나 비판하는 내용이더라도 그들에게 상처가 아니라 깨달음을 주는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찬혁)
MSG가 아닌 천연 조미료의 맛을 내는 음악으로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국민 남매’가 된 악동뮤지션. 이들의 다음 앨범 이름은 이미 예상하고 있겠지만 〈사춘기 下〉다. 사춘기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낼지 모르는 성년 이후의 경험을 악동뮤지션 특유의 감성으로 노래할 〈사춘기 下〉에서는 이들 남매가 또 어떤 색다른 감동으로 대중을 사로잡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글 · 김지영 기자 | 사진 제공 · YG엔터테인먼트 | 디자인 · 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