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농구선수 첼시 리. 사진 동아DB
지난 시즌 여자프로농구 KEB하나은행에서 뛰었던 첼시 리(27)가 ‘한국계 혼혈선수’가 아닐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첼시 리의 사문서 위조·변조 혐의가 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되면 첼시와 관련된 여자프로농구 각종 기록도 삭제와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강지식)는 첼시 리가 제출한 자신과 아버지의 출생증명서가 위조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검찰은 미국에 머물고 있는 첼시 리가 소환 요구에 응하지 않아 미국 사법당국에 형사사법 공조를 요청하고 회신이 올 때까지 기소중지했다.
검찰에 따르면 첼시 리는 자신과 아버지의 출생증명서를 위조해 지난해 5월과 10월 하나은행 농구단에 제출한 혐의(위조사문서 행사)를 받고 있다. 이 서류는 올해 4월 그의 특별귀화가 추진될 때 법무부 국적과에도 제출됐다.
첼시 리는 4월 초 대한체육회의 특별귀화 추천을 받았다. 일종의 통과 절차인 법무부 국적심의위원회만 거치면 한국 국적을 취득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최종예선에도 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법무부에 첼시 리의 출생증명서가 위조된 것이라는 제보가 접수됐고, 법무부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첼시 리는 할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이유 덕분에 외국인이 아닌 해외동포로 국내 무대를 밟았다.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규정에 따르면 부모나 조부모가 한국인이면 국내 선수와 같은 자격을 준다. 외국인 선수 2명이 뛰는 효과를 누린 하나은행은 2014~2015시즌 5위에서 지난 시즌 단숨에 2위로 뛰어 올랐다. 첼시 리는 신인왕을 비롯해 득점, 리바운드, 공헌도 1위를 휩쓸었다.
첼시 리의 할머니의 국적 논란은 하나은행 입단 전부터 있었다. 유럽 리그에서 뛰는 첼시 리의 실력을 눈여겨 본 다른 구단이 영입에 나섰지만 할머니가 한국계임을 증명할 서류를 구하지 못해 결국 포기했기 때문이다.
반면 하나은행은 에이전트를 통해 입수한 첼시 리와 첼시 리의 아버지의 출생증명서, 그리고 첼시 리의 할머니의 사망확인서를 WKBL에 제출했다. 이후 WKBL이 관련 서류를 공개하면서 첼시 리의 혈통 논쟁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어릴 때 입양 돼 첼시 리 자신도 한국계임을 몰랐지만 유럽 진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할머니가 한국인임을 알게 돼 에이전트를 통해 한국에 진출했다”는 첼시 리 측의 설명은 그럴 듯 해 보였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특별귀화 의사를 물어봤을 때 첼시 리도 에이전트도 당연하게 받아들여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의혹이 불거진 뒤에도 입단을 주선한 에이전트는 ‘미국에서 문서 위조는 대단히 큰 범죄다. 내가 돈을 얼마나 벌겠다고 그런 짓을 했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우리도 속았다”고 말했다.
유죄가 확정되면 여자 프로농구도 큰 영향을 받는다. 명백한 부정 선수이기 때문에 개인 기록은 삭제할 수밖에 없고 팀 순위에 대한 논란도 불거질 전망이다. 특별귀화 대상자로 첼시 리를 추천한 대한농구협회와 대한체육회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WKBL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선수 등록 서류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고 해외동포 선수 규정을 전면 재검토할 예정”이라며 “조만간 이사회와 재정위원회를 열어 관련자의 제재 수위와 기록 유지 여부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승건기자 why@donga.com
배석준 기자eulius@donga.com